의료생협 제도가 불법 사무장병원 설립을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고 실질적인 불법사례가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현행 의료법에는 의료기관은 의료인과 의료법인만 병원설립이 가능하다. 의료인이 아닌 일반인이 병원 설립이 가능한 유일한 수단은 의료생활협동조합이다.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에 따르면 조합원 300명, 출자금 3000만원 등의 설립 요건만 있으면 의료생협 결성이 가능하다. 의료생협은 지자체의 승인을 얻어 종합병원을 설립할 수 있다.
의료브로커와 병원 사무장들은 병원설립을 위해 자격요건만 갖추면 인가되는 의료생협의 특징을 이용했다. 의료브로커 A씨는 사무장 B씨와 C씨로부터 5000만원을 받고 의료생협 인가서류를 꾸며줬다. 조합원 명의는 빌리거나 일부 도용했고, 출자금은 사무장 B씨와 C씨가 대납했다.
시 인가를 받은 사무장 B씨와 C씨는 동구 중동에 한의원을 개원했다. 문제는 이들이 복지보조금 청구액을 부풀리기 위해 의사들에게 환자들을 과잉처방·진료하도록 지시하면서부터다.
필요 없는 약을 처방하거나 침이나 물리치료 등을 맞도록 권유했다. 심지어 건강한 간호조무사들도 침을 맞게 했다. 불법 사무장병원 운영으로 얻은 복지보조금이 총 13억원이다.
국민 혈세가 사무장병원 운영자의 뒷주머니로 넘어가는 셈이다. 사무장 병원은 영리만을 추구하는 만큼 불법, 과잉 의료행위로 환자들이 고스란히 피해를 받을 수밖에 없다.
실제 국민권익위원회의 '정부합동 복지부정신고센터'의 환수 예상 자료에 따르면 사무장병원 분야 환수 추정액은 약 250억 6500만원에 이른다.
전체 환수 추정액 330억 6700만원의 75.8%에 달하는 수치다. 정부는 불법 사무장병원 설립을 막고자 대대적 단속과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18일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 통과로 국민건강보험공단은 경찰 등 수사기관으로부터 사무장병원 개설 결과를 통보받으면 해당 기관이 청구한 급여 비용 지급을 보류할 수 있다.
보건복지부는 의료생협 기준을 강화해 조합원 500명과 1억원의 출자금을 내야만 설립 가능토록 하는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설립 비용만 올렸을 뿐 사무장병원 근절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 아닌 사무장 병원 설립 여지는 남겨두고 있는 셈이다.
지역의 한 의사는 “300명의 조합원, 3000만원의 출자금만 모으면 설립이 가능한 의료생협 제도는 불법 사무장병원 설립을 위해 이용되기 딱 좋은 구조”라며 “급여비용 지급을 보류하는 것은 일시적인 방편일 뿐이다. 불법 사무장병원을 뿌리 뽑기 위해선 의료생협 설립 인가 기준의 강화와 일원화된 관리·허가 체계 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송익준 기자 igjunbabo@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