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씨가 여성 택시기사에 나선 것은 1998년 가을로 거슬러 올라간다. 두 아이를 둔 평범한 가정의 전업주부였던 김씨는 1996년 남편과 예상 못한 사별을 하면서 생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초등학생 두 아이를 맡겨두고 생계를 위해 처음 시작한 건 동네 미용실의 미용사.
그러나 미용실 안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게 답답하던 김씨는 한 택시기사의 권유로 핸들을 잡게 됐고, 면허증과 운전경력이 있던 김씨는 1998년 10월쯤 한 택시회사를 찾아가 사장을 설득한 끝에 차열쇠를 받을 수 있었다.
김 씨는 “당시만 해도 택시 운전석에 여성이 앉아 있으면, 횡단보도 건너던 사람들도 여성 기사를 이상하다는 듯 한참을 바라보던 때”라며 “택시를 세우려고 손을 흔들다가 여성운전자가 다가오면 그냥 보내고 다음에 남성 운전자의 택시를 타는 손님도 꽤 있었다”고 기억했다.
불리한 여건에서도 김씨는 택시운전을 여행이자 사람을 만나는 친교라 생각하며 핸들을 놓지 않았다. 김씨는 “가로수에 파란 잎이 피고, 낙엽 지고 눈이 쌓이는 걸 운전하며 바라보는 게 여행같았고, 10대부터 80대 어른까지 만나 대화하는 게 행복”이라고 전했다.
그런 김씨에게도 교통사고라는 고비가 찾아왔다. 택시운전을 시작해 김씨가 교통법규를 위반해 사고를 냈고, 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택시는 내 길이 아닌가”라며 며칠을 고민했다.
또 블랙박스가 없던 당시 점잖게 생긴 남성 손님이 뒷자리에 앉아 성적 농담을 건넬 때 식은땀이 날 정도로 무섭기도 했다.
이어 2005년 꿈에 그리던 개인택시를 취득했을 때는 새벽 4시부터 다음날 자정까지 택시에서 먹고 지냈을 정도로 운전에 전념했다.
김 씨는 “택시가 돈을 버는 수단이기도했지만, 이를 통해 만나는 이들과 종교를 함께 이야기할 수 있어 포기하지 않았다”며 “개인택시로 처음 산 차를 6년만에 50km를 운행했을 정도로 운전이 곧 생활이었다”고 기억했다.
김씨는 택시나 버스, 대형버스 운전에 뛰어드는 후배 여성들이 자신이 겪은 편견 없이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데 눈을 돌리고 있다.
그는 107명이 회원으로 활동하는 대전여성운전자회(회장 김영임)에서 총무 역할을 맞고 있다.
김씨는 “시대가 바뀌어 지금은 여성 운전자가 더 조심스럽고 섬세하게 운전한다는 점을 승객도 알아 여성 택시기사가 인기”라며 “두 아이가 건강하게 성장해 감사하고, 고민하는 여성에게 택시운전은 당당히 일하고 전문성을 갖출 수 있는 분야”라고 전했다.
임병안 기자 victoryl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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