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집까지 문학집을 내면서 거쳐간 문인들이 2000여 명에 이르고 있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대부분의 작가들이 이곳을 거쳐갔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울대에서는 백수 향토지 연구라는 논문이 나올정도로 60년의 역사는 의미가 있다고 본다. 인생을 60년 살다보면 애로사항이 있듯이 백수또한 그랬다. 역대 대통령 시절을 모두 거치면서 현재까지 살아남았다는 것이 기적이다. 농사짓고 사는 시골지역에서 원고를 구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라 생각된다. 처음 백수문학회를 만든 백용훈 선생의 정신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백수와의 인연은 어떻게 맺게됐나?
▲축산업을 하고 있었다. 백수를 만날 당시에는 조그만 사업을 하다 실패를 했던 상황이었다. 백수를 만나면서 그 어려움을 정신적으로 극복하게 된 계기가 됐다. 20년정도 백용훈 선생을 보필했고, 회장을 맡은지는 10여 년이 지났다. 백용훈 선생이 수십년동안 백수를 이끌어왔다. 처음부터 글을 쓰겠다는 것이 아니라 백용훈 선생을 돕기 위해, 백 선생이 글을 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백수와 함께 해왔다. 백수를 위해서 걸은 걸음이 30년동안 9만리를 걸은 것 같다. 진실성 하나로 선생을 보필했다. 백용훈 선생이 병원에 입원하면서 책을 못내게 됐는데 53집 원고를 취합해 갖고 있었다. 나에게 한번 해보라고 한 이후로 10년 동안 이 일을 하고 있다.
-어려움은 없었나?
▲지금도 문학을 한다는 것은 고독한 일이다. 밀려오는 두려움을 헤쳐나가는 것이 힘들다. 무엇보다 경제적인 것이 어려움이 컸다. 군에서 일부 지원을 받긴 했지만 문집을 펴내기에는 부족했다. 1년에 2번정도 문집을 내려니 제정적 어려움이 컸다. 마침 소를 키우고 있었고, 송아지를 팔아서 책을 냈다. 군에서 일부 보조를 받고 있지만 여전히 비용은 부족한 형편이다. 사비를 털어 문학지를 내는 것은 여전하다. 백수문학은 세종시가 되면서 세종시 1번으로 등록 단체다.
-앞으로 백수문학의 방향은?
▲모든 것이 서울 중심이다. 계간지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다. 계간지화 하고 싶다. 20년 전쯤부터 동인지로 시작했다. 동인지 성격을 갖고 있다. 한국 문화사에 널리 회자돼 있으며, 신인 배출하고 있다. 당선된 문인들이 사회활동 많이 하고 있다. 백수 문학상을 한번 재정해보고 싶다. 또 백용훈 선생이 돌아가신지 10년이 지났지만, 문학비 하나 못세웠다. 문학비 건립과 문학상 재정 등이 꿈이다. 사회적 인프라 구축만 된다면 훌륭한 문학지로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 일본의 춘추 문학이 세계 문학지가 돼있다. 백수 역시 세계에서 통하는 웅비적 생각을 갖고 있다.
김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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