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전의 한 주상복합의 비좁은 경비실. |
최씨가 근무지를 벗어나 도착한 곳에서는 삽으로 구덩이를 파고 묘지 옆에 회양목 나무를 심는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최 씨는 “관리반장이 안내한 곳은 아파트 입주자대표의 조상 산소였다”며 “경비원이 개인의 산소까지 관리해야 하는 처지가 한탄스러워 1주일 후에 사표 냈다”고 말했다.
#2. 대전 유성구 한 주상복합 건물에서 근무하는 또다른 경비원 오모(67)씨는 근무지서 맞는 아침마다 어지러움을 느낀다.
전날 오전 7시에 출근해 낮에는 입주민들의 분리수거와 택배를 돕고 밤에는 상가에서 술에 취한 취객을 혼자 관리하느라 24시간 근무 중 수면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책상에 엎드려 쪽잠을 청하거나 의자에 앉아 고개를 젖히고 피곤함을 누그러트리는 게 수면의 전부다.
아파트·주상복합시설 경비원 상당수가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처우에 24시간씩 근무하면서 휴식시간도 보장받지 못해 제도 개선이 요구되고 있다.
아파트 등에서 근무하는 경비원(또는 관리요원)은 근로기준법상 적정한 근로시간 규제를 받지 않는 감시적 근로자에 해당한다. 감시적 근로자는 대기시간이 많아 간헐적으로 일하는 단속적 근로자와 함께 최저임금을 적용받지 않고 있다.
또 55세 이상 감시·단속적 근로자에게는 최저임금의 90%만 지급할 수 있도록 최저임금을 보장하는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때문에 경비원 대다수가 2명이 1조를 이뤄 24시간씩 근무하는 형태로 근무하고, 1주일간 61시간씩 일을 해도 임금은 최저임금에 미치지 않고 있다. 근무시간에 4~6시간씩 휴게시간이 경비원에게 주어지지만, 현장에서는 제대로 쉬지 못한다.
890세대 규모의 아파트에서 근무하는 경비원 조모(59)씨는 “관리업체는 휴게시간을 길게 잡아 경비원에게 지급할 임금을 줄이지만, 휴식공간도 없고 휴게시간에 앉아 있으면 놀고 있다는 핀잔을 듣기 일쑤”라고 토로했다. 특히, 경비원과 관리요원이 법적으로 구분돼 있지만, 경비요원으로 채용해 아파트 관리업무까지 모두 떠맡는 모호한 구조도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주택관리공단이 올해 8월 조사 결과에서도 대전·충남에서 아파트 관리사무소 경비원과 직원이 입주민에게 폭행당한 사례가 지난해 22건, 올해 29건 보고됐다.
임병안 기자 victoryl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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