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추가 양적완화 발표-엔저현상 장기화 전망
지난달 주말 일본의 추가 양적완화 발표로 국제 환율전쟁이 다시 시작됐다. 내수 부진과 디플레이션 압력에 일본과 유럽 등이 경쟁적으로 돈을 풀어 통화가치를 낮추고 수출 증대를 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수출 기업에 부담을 주는 엔저가 또다시 불거져 가뜩이나 어려운 경기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상당기간 엔저가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고 있다. 해외 투자은행들도 달러 대비 엔화 환율을 상향조정하고 있다. 달러 강세 흐름에 원화도 약세를 보일 것 이라는 전망도 있지만 경상흑자 지속 등으로 원고엔저 시대로 접어들 가능성이 있는 만큼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편집자 주>
▲日 제2차 아베노믹스 본격시동=일본의 엔저정책이 거침 없다. 일본 중앙은행과 정부가 추락하는 경기를 떠받치기 위해 추가 양적완화를 단행하고 재정 투입도 대폭 확대하기로 했다.
일본은행은 지난달 31일 금융정책결정회의를 열고 찬성 다수(찬성 5명·반대 4명)로 추가 금융완화를 결정했다. 일본은행은 시중에 돈을 더 풀기 위해 1년간 매입하는 자산을 현재의 약 60조~70조엔에서 80조엔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지난 5일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교도통신이 주최한 강연회에서 “물가 상승 목표를 조기에 달성하기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며 “채권 매입을 비롯한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발언 직후 전날 달러당 113엔대였던 엔·달러 환율이 2007년 12월 이후 7년만에 114엔대로 올라섰다.
일본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확인되자 해외 투자은행들은 엔·달러 환율을 잇따라 상향조정하고 있다. 국제 금융센터와 한국은행 에 따르면 다수의 해외투자은행들이 1년 후 엔달러 환율을 120엔대로 올리고 있다. 골드만삭스, JP모건, 크레딧스위스 등은 내년 3분기 엔달러 환율 전망치를 기존 110엔대에서 120엔대로 일제히 올렸다. 엔저가 심화될 것으로 본 것이다. 특히 내년 하반기에 미국이 금리정상화에 나설 전망이어서 달러화 강세로 인한 엔화 약세 심화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원고엔저 시대까지도 예상되고 있다.
지역의 한 금융전문가는 “내년에 우리나라는 수출 증가와 국내 민간소비 위축으로 경상수지가 대폭 흑자 기조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원고엔저가 심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7일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화 가치는 장중 달러당 115.47엔까지 하락했다. 지난 4일에 2007년 12월 이후 처음으로 엔화 환율이 달러당 113엔을 넘어선 이후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일본은행이 추가 양적완화를 전격 발표하기 전날인 지난달 30일 109.10엔과 비교하면 3거래일 만에 환율이 3.8%나 상승했다. 특히 전날 뉴욕 외환시장에서는 114엔을 돌파하기도 했다. 엔저의 공습에 원·엔 환율 역시 추락(원화 강세)했다.
7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일보다 9.9원 오른 1093.7원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 2013년 9월 5일(1098.4원) 이후 1년 2개월 만에 최고가를 기록했다.
엔저로 탄력을 받은 달러 강세의 영향이었다. 증시 타격도 컸다. 일본 업체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자동차·철강·조선 등 우리 경제의 주력 업종 주가가 급락했다. 지난 4일 코스피지수는 전날보다 17.78(-0.91%) 떨어진 1935.19을 기록했었다. 전날에 이어 현대차(-3.12%), 삼성전자(-1.46%), 기아차(-0.20%) 등 주요 수출주가 하락세를 주도했다.
하지만 지난 7일 코스피는 전날보다 3.39포인트(0.18%) 오른 1939.87로 장을 마감했다. 원·달러 환율이 급등함에 따라 시장의 변동성은 확대되고 있지만, 대형 수출주를 둘러싼 우려는 다소 진정되면서 지수가 소폭 오른 것으로 보인다. 엔저의 최대 피해주로 지목됐던 현대차와 기아차 등도 당국의 엔저 속도 조절 의지가 확인됐다는 시장 평가에 동반 약진하는 모습을 보였다.
▲엔저에 대응할 근본적 대책 필요=당분간 엔저 흐름이 계속될 전망이지만 우리나라가 특별히 내세울 대책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기축통화국인 일본이 엔화를 마구 찍어 시장에 내놓겠다는데 이를 막을 방안은 없다. 이 점이 정부의 가장 큰 고민거리다.
주형환 기획재정부 1차관은 지난 6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출석해 “엔화 움직임을 모니터링하고, 엔화와 원화가 동조화해서 움직이도록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엔저 대응방안에 대한 지적에 “당국은 엔저에 대해 3가지 관점에서 정책을 펴고 있다”며 “엔저 현상에 어떻게 대응하고 엔저를 어떻게 활용할지 대책도 제시했다. 무역보험공사의 환변동보험 규모를 확대하고, 시설재 수입으로 설비투자를 늘리면 관세를 낮춰주기로 한 것도 이런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당장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는 수출기업에게 근본적인 대책이 되진 못하고 있다. 일각에서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더 내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뾰족한 대책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사상 최저 2.0% 금리까지 온 데다 한·미·일 경제의 규모를 고려할 때 분명히 한계가 있다.
또한 국내적으로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한 수준에 이른 상황에서 섣불리 쓸 수 있는 카드가 아니다. 한은은 그동안 환율 방어를 위해 금리를 움직이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고, 금리인하의 환율방어력이 회의적이라는 점도 금리인하 카드를 주장하기 어려운 요인이다.
이상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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