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와 건강] 남성도 산후우울증이?

[이슈와 건강] 남성도 산후우울증이?

아빠는 다 자식바보? 난 내 아이가 싫어요

  • 승인 2014-11-03 13:52
  • 신문게재 2014-11-04 9면
  • 김민영 기자김민영 기자
산모 10명 중 1명꼴로 출산 후 6~12주에 경험하는 비정상적 우울증인 '산후우울증'. 흔히 산후우울증은 여성들만 겪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남편들도 산후우울증에 빠질 수 있다.

특히 미국의 한 연구팀에 따르면, 평균 25세의 남성 1만 623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한 결과 아이가 태어난 지 5년 이내에 우울증을 앓을 확률이 '아버지가 아닌' 또래 남성에 비해 68%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0대 중반에 부모가 된 남성이 출산을 겪은 여성처럼 산후우울증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다.

아빠도 겪는 산후우울증, 그 원인과 해결방법에 대해 을지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정성훈 교수의 도움말로 알아본다.

▲'좋은 아빠' 되어야겠다는 부담 작용=아빠의 산후우울증은 사회적 상황이 변화함에 따라 늘어나게 되는 일종의 적응 문제다. 즉, 아빠의 산후우울증은 예전과는 달라진 부부의 성 역할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불과 몇 십년 전까지만 해도 아빠는 그저 돈을 벌어와 식구를 먹여 살리는 것으로 자신의 의무는 끝난다고 여겨졌지만 지금은 임신에서부터 출산, 양육에 이르기까지 아빠도 엄마와 마찬가지로 공동의 책임을 가지고 노력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우리나라 문화적 특성상 육아나 아버지에 대한 교육을 전혀 받지 않고 자라는 남성들은 이에 대해 조언을 구할 곳이 마땅치 않다. 따라서 스스로 아버지의 위치를 터득해야 하는 부담이 크고, 하소연할 상대도 없는 경우가 많다. 이 같은 원인이 남편을 힘들게 만들 수 있다.

게다가 '딸 바보', '아들 바보' 아빠들이 늘어나면서, 나도 '좋은 아빠'가 되어야겠다는 부담감을 안고 살아가는 남성들이 몇 배로 증가하게 됐다. 미리 예상을 했더라도 직접 경험해보면 양육 부담이 만만치 않고 지금까지 자신의 생활방식까지도 변해야 하기 때문에 적응하는데 애를 먹게 된다.

이런 부담감은 불안, 초조, 심하면 우울증을 낳으며 곧 스트레스로 이어진다. 즉 여성의 산후우울증은 대부분 호르몬 체계의 변화 때문이지만 남성의 산후우울증은 출산 후 아이에게만 쏠리는 아내의 관심, 가정 밖의 일 부담은 여전하면서 아이의 양육을 아내와 비슷한 정도로 지어야하는 부담, 아내의 산후우울증의 영향 등 스트레스로 인한 심리적 원인이 대개의 비중을 차지한다.

을지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정성훈 교수는 “산후우울증을 겪는 남성들은 아이가 태어난 뒤 좋은 아빠가 되어야 하는 부담과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부담을 나누어야하는 현실적인 것들이 뒤엉켜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것”이며 “일시적인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심한 증상을 겪더라도 그것이 우울증일 수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한다.

▲ 다양한 대화 시도로 부부가 함께 극복해야=아빠에게 생기는 산후 적응부전은 대부분 아이를 기르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문제는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의 우울증이다. 아이 때문에 결혼을 후회하거나 변화된 삶에 적응하지 못해 부부싸움이 잦은 경우에는 전문의의 치료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런 남편의 경우는 대개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빠가 되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한 경우가 많다. 전문의의 상담이나 항우울제 등의 치료로 쉽게 극복할 수 있으므로 반드시 전문가를 찾는 것이 좋다.

아내의 임신과 출산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여 입덧은 물론 급기야 우울증까지 오게 되는 남편, 이때 아내는 남편과 다양한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남편의 감정을 잘 살피고 칭찬을 많이 해주며 의욕을 돋워주는 것이 필요하다. 여성은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하는 편이라 금방 드러나지만, 남성은 정신적으로 고통을 겪다가 마지막에 행동 문제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는 더욱 중요하다.

또한 아이를 돌보거나 아내와의 육아분담을 무거운 짐으로만 여기지 말고 아이를 가족으로 받아들이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더불어 아이로 인해 변화된 생활과 아이에게서 느끼는 부담감과 책임감을 자연스럽게 인식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을지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정성훈 교수는 “증상이 비교적 가벼운 경우에는 남편이 아이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갖게 하는 등 아내의 적극적인 역할이 중요하지만 증상이 심한 경우에는 반드시 전문의와 상담해 치료를 받게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민영 기자 miny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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