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시감]국감의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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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시감]국감의 계절

고미선 편집부장

  • 승인 2014-10-16 14:21
  • 신문게재 2014-10-17 17면
  • 고미선 편집부장고미선 편집부장
▲고미선 편집부장
▲고미선 편집부장
춥다. 온 몸을 흠뻑 적시던 세월호의 비극을 뒤로하고, 윤 일병 구타 사망, GOP 총기난사 등 악몽의 어제를 건넌 10월, 가을은 실종되었고 어느덧 국정감사의 계절이다. 국정감사, 말 그대로 정부(政府)가 한 정사(政事)의 잘못을 감독하고 살피는 국회의 행정감사를 말한다.

매년 똑같은 문제를 내걸어 장사판을 꾸리거나, 어떻게든 튀고 싶은 연예인병 의원님들이 등장하기에 '막장' 같은 면면도 없진 않지만, 그래도 정국을 뒤흔들만한 대형 이슈들이 있어 꽤 재미지다. 그중 진정한 국감의 백미는 '스타 의원'일 것이다. 추적 60분을 뺨치는 기승전결, 오랫동안 준비한 현안과 자료들로 한방이 터질 때 언론들은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

흔히 국감을 '야당의 놀이터'라고 부른다. 언제나 대형 특종들은 견제와 폭로 속에서 발생했고, 국민들은 분노하고 환호한다. 물론 무리수 혹은 자충수에 여당 스스로 함정에 빠지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올 국정감사는 뭔가 좀 밋밋하다.

세월호 참사라는 굵직한 이슈와 담뱃값ㆍ주민세ㆍ자동차세 등의 증세논란, 그리고 사상최대 672곳이라는 피감기관 대상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다. 5개월 국회 공전 끝에 허겁지겁 진행된 국감은 이미 '구태국감' '맹탕국감'이라는 비난의 시선을 받고 있고, 일각서는 '아이고~ 의미없다'라는 국정감사 무용론도 만만치 않다.

과거 국감을 돌이켜 보면 인상 깊은 스토리들이 있었다. 지난해 김태원 새누리당 의원의 '그린벨트 사람들 이야기, 43년의 고통, 현장에 답이 있다'라는 국감 현장보고서에는 지역주민들의 현실을 직접 발로 뛰며 채록된 내용들이 담겨 눈길을 끌었다. 주민 100여명의 고통과 건의사항은 낱낱이 녹취록으로 담겨있었고 인터뷰 형식의 보고서도 남달랐다.

2012년 19대 국감에서 가장 빛났던 스타의원은 허술한 우리 군의 휴전선 경계태세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북한군 병사의 이른바 '노크 귀순'사건을 처음으로 공개한 민주당 초선 비례대표인 김광진 의원이다. 한 술 더 떠서 북한군 귀순자가 처음에 동해선 경비대의 현관문을 두드렸으나 응답이 없자 다른 소초로 이동한 새로운 사실도 밝혀졌다. 이같은 김의원의 폭로는 일주일 사이에 국방부 장관이 대국민사과를 하고 대대적 문책을 하는 등의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왔다.

2010년 국감의 중심에는 '4대강'이 있었다. 이념성향 따라 다르기는 했지만 종합일간지 1면은 정부의 4대강 살리기 사업 추진과정에서 나타난 위법성과 부조리로 장식되곤 했다. 물론 4대강 설전은 장소만 과천에서 세종시로 바뀌었을 뿐 4년이 지난 지금까지 되풀이 되고 있다.

2014년 국감이 재미없는 이유는 행정부의 '과(過)'에 대한 폭로가 재탕 삼탕으로 인해 약발이 사라졌기 때문이고, 야당 파이터들이 링 위에서 맥을 못추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의 중심은 시간부족과 준비소홀에 있겠지만 피감기관의 무성의한 태도, 언론의 '구멍숭숭 그물망'들도 중요한 이슈들을 날려버리는 주요인이 될 수 있겠다.

올 국정감사가 끝나면 국민들의 기억 속에는 어떤 스토리들이 남게될까.국감장에서의 반말과 고압적인 태도는 여전하고, 단골메뉴인 파행과 정회 역시 올해 국감에서도 등장했다. 민생에 대한 기대는 저버린지 오래다. 혹시라도 괴물쥐, 치약, 산양삼, 불에 탄 소방복 등의 키워드만 기억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유신으로 폐지됐다가 민주화 바람을 타고 1988년 부활한 국정감사는 권위주의 정부에 대한 경고이며, 국회의 존재가치다.
지금부터라도 소속 정당을 초월해, 실생활과 관련된 서민 증세 논란과 관피아ㆍ낙하산 인사 근절 등 국민적 관심이 높은 사안에 대한 내실 있는 국감이 될 수 있도록 집중력을 발휘하길 바란다. 무엇보다 여야 모두가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국감이 될 때 정사(政事)는 건강해 진다는 것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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