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가는 이삭이 달린 볏줄기를 뜯어서 갈라보면 통통하고 희다 못해 투명해 보이는 애벌레가 꿈틀거리고 있다. 이 애벌레는 매우 재미있는 애벌레였다. 마을 아이들은 이때쯤이면 논두렁 옆에 나 있는 도랑이나 물길, 작은 다리 밑에 고여 있는 웅덩이에서 한가롭게 무리지어 다니는 송사리를 잡으러 다니곤 하였다. 송사리들은 비교적 얕은 물 사이를 떼를 지어 다니다가 인기척이 나면 깜짝 놀라 방향을 이리저리 바꿔 몰려다니곤 하였다.
몰려다니는 송사리 떼에 햇빛이라도 비추면 은빛으로 반짝이는 배 쪽 비늘과 물결에 반사되는 햇빛이 어우러져 신비스런 장면을 연출하기도 하였다. 물속을 몰려다니는 송사리는 마을아이들이 마음속에서 동경하는 자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마을 아이들은 이러한 송사리 떼들이 부러우면서도 송사리를 잡아보려 애썼다. 송사리를 잡는 일은 쉽지 않았다. 물속에서는 송사리가 약아서 요리조리 잘 빠져 다녔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물이나 체박을 이용해서 잡는 일은 어른들의 몫이었다. 아이들이 가장 손쉽게 송사리를 잡을 수 있는 방법은 볏줄기 속에서 찾아낸 애벌레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이삭이 붙어있는 볏줄기를 하나 잘라서 벼이삭을 훑어 낸 뒤에 훑어진 벼이삭의 맨 끝 가녀린 부분에 애벌레를 묶으면 그야말로 훌륭한 볏줄기 낚싯대가 완성되었다. 이 볏줄기 낚싯대를 이용하여 물속에 담그고 주의를 집중하고 있으면 송사리가 와서 슬슬 건드리다가 입으로 무는 순간 낚아채면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송사리가 애벌레를 물었다가 놓는 순간이 매우 짧았기 때문에 물속으로 다시 떨어져 유유히 사라지는 경우가 많았다. 송사리가 무는 순간 집중력과 순발력을 발휘해야 잡을 수 있었다. 맨발의 볏줄기 낚시꾼 옆에는 항상 물이 담긴 검은 고무신이 있었다.
정동찬ㆍ국립중앙과학관 과학사연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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