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프리즘]문상유감(問喪有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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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프리즘]문상유감(問喪有感)

남인환 연세남인환피부과 원장

  • 승인 2014-10-12 14:00
  • 신문게재 2014-10-13 17면
  • 남인환 연세남인환피부과 원장남인환 연세남인환피부과 원장
▲ 남인환 연세남인환피부과 원장
▲ 남인환 연세남인환피부과 원장
이번 가을엔 참 다녀야 할 곳이 많다. 결혼도 많고 왜 그리 문상을 많이 다녀야 하는지. 요즘 같은 환절기에 급작스레 어르신들께서 돌아가시는 일이 많아졌다. 장수하시다 천수를 다하시면 호상이라고 위안이라도 받지만 갑자기 돌아가시거나, 오랜 치병중에 돌아가시면 훨씬 더 안타깝고 애통하다.

중요한건 어떤 상태로 계시다 가셨느냐 하는 것이다. 요즘 회자되는 '구구팔팔일이삼'이 가장 바람직한 마감이라 했는데, 99세까지 건강하게(팔팔하게) 살다가 하루이틀 앓고 3일째 돌아가시는 것이 본인과 가족 모두에게 가장 축복(?)받은 일이라 했다. 평소에 건강하게 살다가 하루이틀 정도 아프면, 자식들은 큰 관심과 우려속에 지켜보게 되고, 긴 유병기간 없이 돌아가시는 것, 참 평온한 삶의 마무리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모두 망백까지 살수도 없거니와 더욱 아무 병없이 산다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깝다. 실제 주변에 문상을 다녀보면 오랜 투병생활, 그것도 마지막 수년간은 병상에서 누워 보내시다가 돌아가신 분들의 가족을 보면, 돌아가신 분과 그를 돌보던 가족들의 힘들었던 삶이 투영되어 있어 더 가슴 아프게 한다.

놀랍게 발전한 현대의학은 많은 사람들의 수명을 연장하였지만 반드시 긴 수명만이 삶을 행복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삶의 끝자락에서의 의학적인 연명치료가 환자나 그 가족들에게 어떤 의미와 가치를 주는지에 대하여 한번쯤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다. 노인에게는 질병상태가 아니라도 신체 기능은 많이 저하되어 있고, 어떤 치료를 하더라도 젊은이 같은 본래의 건강상태로 되찾지 못한다.

그래서 어르신들이 앓는 모든 병은 '노환'이고, 노환으로 스스로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잘드시지 못하면 쉽게 죽음 앞에 서게 된다. 노인분들이 힘든 병을 진단받고 근치 치료도중 기운을 잃고, 병상에서 못 일어나는 경우를 너무 자주 보게 된다. 따라서 노인들에서의 치료에선 근치 치료보다 남은 삶을 지키는 보존 치료가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의사인 나도 가족 어르신들이 암수술, 심혈관우회술, 뇌수술과 같은 많은 치료노력과 위험성이 너무 큰 수술일 경우 당연히 말린다).

노인분들을 평소에 잘 모시지 않다가 큰 병이 나서 죽음을 앞두고 있으면, 자식들은 그때서야 왜 야단법석을 떨까, 평소에 후회를 남기지 않게 잘 모셔야지 가신다고 하니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실제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돌아가신 후 자신에게 회한이 남을까봐, 치료과정을 견디지 못할 노약자를 힘든 치료에 매달리게 하는 게 아닌지 반성해 볼 일이다.

75세, 평소 일상적인 생활을 하실 만큼 건강 하셨으나 감기 후 폐렴증상으로 검사중 진행된 폐암발견, 6개월 시한부 진단을 받은 후, 어떤 치료를 하든 우리 아버지 꼭 살려야 한다는 시집간 딸들의 막무가내로 방사선 치료와 항암요법을 위해 입원 치료하였고, 힘든 치료과정에 발생한 기력저하로 3개월 후 운명하셨고, 장기간 입원치료와 항암치료로 가족들에게 파산에 가까운 경제적 부담을 남겼다. 만일 보존적인 치료를 받았더라면 망인은 마지막 6개월을 남은 삶을 정리하면서 가족들과 좀 더 가까이 있다가 가셨을텐데 하는 안타까움이 있었다.

무리한 치료 요구(환자 본인만을 위한 것은 아닐거다)와 못 드시고 못 움직이고 기력을 잃으면 돌아가시는 노인 질환의 특성을 무시한 치료만 받으면 삶이 더 나아질 거라고 무리한 희망을 준 의료진의 책임은 없는 걸까? 말기암환자에 있어 항암치료 및 방사선치료 빈도가 유난히 높다는 통계자료는 우리나라 의료현실이 갖고 있는 여러 문제점을 시사해주고 있다. 그래서, 질병치료 관점에서만 노인환자를 보지 않고 환자의 편안한 여생을 보듬어줄 줄 아는 의사들의 따스한 마음과 넓은 식견을 기대해 본다.

노인분들의 일상적인 생활에 불편을 주는 소소한 질병은 당연히 잘 치료하고 관리해 삶의 질을 높여야겠지만, 목숨에 관련된 중대질환일 때, 연명치료를 하느냐, 또 어떤 치료방법을 선택하느냐 하는 것이 그분들이 마지막 몇 개월 혹은 몇 년간의 인간적인 삶의 모습을 결정한다. 이런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할 때, 병이 진단된 후엔 가족들 간의 의견을 함께하긴 힘들다.

따라서, 노인분을 둔 가정이라면 한번쯤 가족끼리 연명치료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원칙을 정해 놓기를 권하고, 또는 어르신 스스로 치료방향을 미리 정해주시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더불어 치료결정에 앞서 담당 의료진 이외 주변의 다른 의사에게도 치료의 당위성이나 합리성을 조언 받아보길 권한다. 이런 준비된 행동은 노인분들께 갑작스럽게 닥치는 한계상황에서 가족들이 좀 더 이성적인 판단을 하게 만들어, 삶의 끝자락에 선 노인분들의 마지막 인간적인 삶을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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