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한 방법을 동원해 탈세를 일삼는가 하면 본인은 물론 자녀들의 병역을 회피하기 위해 외국 국적을 취득하거나 허위 진단서를 발급하기도 한다고 여긴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온갖 권리는 누리려 하면서도 정작 가장 기본이 되는 국방의 의무와 납세의 의무는 소홀히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국방의 의무는 치졸한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피하려 한다고 알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국내 재계 서열 3위인 SK그룹 최태원 회장의 둘째 딸 최민정이 파문을 일으켰다. 23세의 최민정은 지난 4월 117기 해군 사관후보생 모집에 지원, 필기시험에 합격한데 이어 면접과 신체검사를 통과한 후 최종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특히 그는 해군에 복무하는 여군 장교의 많은 보직 가운데 가장 힘들다고 알려진 함정승선을 지원했다. 보도되는 언론마다 조금씩은 다르게 소개하고 있지만 가족 내부에서 적지 않은 반대가 있었을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는 꿋꿋하게 자신의 소신대로 대한민국 해군의 사관후보생이 됐다.
1남2녀의 자식을 두고 있는 필자는 '내가 재벌이라면 내 딸이 군에 자원입대 한다면 허락했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허락하기 어려웠을 것이란 결론에 이르렀다. 그러니 어린 20대의 젊은이가 퍽이나 위대해 보였다.
최민정이 여군 사관후보생 시험에 응시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그가 중국 베이징대에 다니면서 부모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거의 받지 않고 한국학생 대상의 입시학원 강사나 레스토랑, 편의점 아르바이트 등으로 생활비를 벌고 장학금으로 학비를 충당했다는 사실이 덩달아 알려졌다.
지금까지 재벌과 재벌 2세, 3세들이 보여 온 행태와는 전혀 다른 모습에 국민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나아가 찬사를 보냈다. 정말 훌륭한 젊은이라고 입 모아 그를 칭찬했다. 최민정이 보여준 행동은 국민들이 고정관념처럼 갖고 있는 재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상당부분 깨뜨리는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물론 그녀가 이러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군에 자원입대 한 것은 아닐 것이다. 최민정의 판단은 참으로 아름답고 훌륭하다. 더욱이 국방의 의무가 주어진 남성이 아닌 선택 사항인 여성이 이 같은 판단을 했다는 점에서 파장은 크다.
SK그룹 창업주인 최종현 회장은 지난 98년 세상을 뜨면서 자신이 죽거든 매장하지 말고 화장하라는 유언을 남겨 사회에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당시 시대상을 반영하고 그가 국내 굴지의 대기업 창업주라는 점에서 그가 그런 선택을 한 것은 엄청난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래서 그의 뒤를 이어 많은 정관계 인사들이 매장 대신 화장을 하겠노라는 다짐을 하는 일이 뒤를 잇기도 했다. 그만큼 재벌이 미치는 사회적 파장이 크다는 것을 방증한 사건이었다. 그의 뒤를 이어 16년 만에 그의 손녀가 사회에 한 번 더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세상 부러울 것이 없는 한국사회의 재벌이 매장을 포기하고 화장을 선택한 일이나 재벌의 딸이 자원해서 군에 입대하는 일은 이 사회가 아직 암울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어서 의미를 갖는다. 재벌을 비롯해 권력이나 돈을 가지고 있는 이 사회의 모든 특권층에게 불만이 충만해 있던 국민들이 최민정의 선택을 통해 희망을 보았다. 아직도 자신들을 특권층으로만 여기고 국민의 의무를 다하지 않으려는 부류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사회는 조금씩 변해가고 있고, 특권층들도 그것을 알아가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최종현 회장의 극락왕생을 기원한다. 최민정 양의 건강한 복무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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