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은 끊임없이 많은 사람들과 세계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글씨는 컴퓨터 자판의 영향인지 점점 관심의 대상에서 멀어져 가고 있다. 그래도 간간히 나라와 겨레를 위해 본보기가 되는 발자취를 남긴 분들의 글씨와 육필원고가 화제가 되기도 하고 나쁜 경우에는 범죄수사를 위한 필적감정들도 간혹 세간의 관심을 끌기도 한다.
그러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신ㆍ언ㆍ서ㆍ판(身ㆍ言ㆍ書ㆍ判)이라 하여 한 인물의 됨됨이를 몸가짐, 말씨, 글씨, 판단력 등 4가지를 기본으로 판단하였다. 어떤 이들을 일러 아무개 글씨는 참 반듯하다든지, 개발 세발 후려 쓴다든지 하는 등 바른 글씨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그런 만큼 정규 교과시간이나 클럽 활동시간에 습자(習字)라고 하는 붓글씨를 배우는 시간이 있었다.
습자시간에는 벼루와 붓, 먹, 연적, 종이 등을 준비하여야 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미술시간에 크레용이나 크레파스를 준비하기 어려웠듯이 습자시간에도 준비물을 준비하기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먼저 학교를 다니는 형이나 누이가 있는 집은 그런대로 쉽게 준비할 수 있었지만 처음으로 다니게 된 학생들은 집안의 선구자나 개척자가 되어야했다.
벼루와 붓(습자필), 먹, 연적 등은 그렇다 하더라도 글씨 연습을 하기 위한 종이(습자지) 또한 지금처럼 흔한 것이 아니었다. 붓글씨를 연습하기 위해서는 신문지처럼 넓은 종이가 필요했는데 마을에서 신문지를 구한다는 것이 지금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습자 시간을 위해 신문, 잡지, 달력 등등 붓글씨를 쓰기에 알맞은 종이가 있으면 모두 모아두곤 하였다.
습자시간에 벼루에 먹을 갈고 글씨를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쓰면서 손과 얼굴, 옷 등에 먹물을 흘리거나 묻혀서 함진아비 꼴이 되기도 하였다. 책상에 통째로 엎어서 책상에 얼룩이 생기는 일도 흔히 있는 일이었다. 선생님과 어른들은 말씀하시곤 하였다. 큰 글씨를 바르게 써 봐야 글씨가 부쩍부쩍 는다고…?
정동찬ㆍ국립중앙과학관 과학사연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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