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충식 논설실장 |
같은 백제 수도인 연계성을 힘줘 말했을 뿐이다. 위례, 웅진, 사비 수도의 공통성 하나가 미개발지인데, 천도한 곳이 대개 그랬다. 제대로 알고 세종시 허허벌판 운운하라는 이야기다. 역사 선생 최태성은 백제를 “ 젊을 때 잘나가다 중년에 동업자와 사업하다 망한 셈”이라고 비유했다. 전체 흐름이 반영된 뼈 있는 사후 진단이다.
역사책은 고구려가 국내성에서 만주로 안 뻗고 평양성으로 이전한 것을 남진정책으로 가르친다. 중국 대륙이 남북조 양분으로 진출이 까다로워진 배경은 잊는다. 한번은 세미나에서 백제 천도가 망국에 영향을 끼쳤다는 정약용의 견해를 행정수도(행정도시) 반대에 써먹어 내가 논박했다. 그랬더니 “균형발전하자고 어떤 국가가 천도하느냐”고 힐난하듯 묻는다. “남섬과 북섬의 세력 균형을 위해 뉴질랜드가 오클랜드에서 웰링턴으로 갔지 않나.” 이번에는 통일 후 치우친다고 거품을 문다. 런던, 모스크바, 아테네, 베이징은 치우쳐도 잘만 살더라고 맞받았다.
더 했다간 “세종시가 밥 먹여주느냐” 소리 들을 뻔했다. 왜 그랬는지, 다산은 고구려에 밀려 도망치듯 공주로 내려온 절박함을 경시했다. 그때도 기득권의 저지와 목씨 세력기반의 공주를 택해 왕권 강화를 도모한 왕실이 있었다. 천도를 재차 단행할 때는 동성왕 시해가 부여 천도 반대 사유로 추정될 정도였다. 대전 유성이 근거지인 사씨 세력이 부여 천도를 왜 지지했을까, 물음표가 붙을 수도 있다.
실제로 천도는 정치세력 재편과 물갈이 코스로 그만이었다. 레닌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모스크바로 옮겼고 계룡산 밑 천도가 아주 잠깐 전두환 머리에 스쳐간 것도 그 계산속이다. 태조 이성계는 “개경은 고려의 도읍이지”라며 한양 서울로 근거지를 바꿨다. 헌재 판결의 '600년간 오랜 관습에 의해 형성된 관행'은 축적된 명분만 충직히 따랐다. 수도 이전 반대 헌법소원을 낸 이석연 변호사가 한양 천도를 반대한 이천우(이방원 사촌형)의 직계 후손인 점도 묘하게 얽힌 우연이다.
필연일지 모른다. 어느 시대건 수도 이전은 허구와 소망의 융합체다. 드라마 '각시탈'에 나오듯이 일제 때는 도쿄에서 경성 서울로 천도를 계획하기도 했다. 인연을 좀 믿는 편인데, 박정희 백지계획 때 지은 금강변 별장에 살았던 거나, 그 옛날 사옥에 대전천도위원회 간판을 과감히 내건 중도일보 밥을 먹는 것, 행정수도 상임집행위원에 이름 올린 것도 깊은 인연이라 생각한다.
표면상으로 뭐라 하든 세종시는 중앙정부가 있는 특별한 도시가 됐다. 수도의 정의가 정부 소재지이면 '행정도시'는 말장난일 수 있지만 실상이 수도 이전에 버금가는 대업이다. 노무현의 야심이 숨었고 맨땅에 헤딩 같아도 1960년 수도권 인구 집중도가 19%였다가 전 국민의 절반이 된 동서고금 유례없는 틀을 깨는 긍정의 동기가 많다. 천도에 반대한 김대중이 옥중편지에 쓴 “서울의 인구는 대폭 대전 지방으로 이주”하는 등의 현 위치에서 한계 극복 방식이 있긴 했다.
다시 역사에 적용시키면 고구려의 평양 천도는 실책 같지만 한반도와 만주 동시 경영의 물꼬를 텄다. 백제 시조 온조가 위례성을 첫 수도로 낙점한 데는 평야와 방위가 고려됐고, 공주와 사비 천도는 멸망 시계를 늦춘 불가피한 용단이었다. 세종시는 보다 탁월한 결단이어야 한다. 이충재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을 만나 환담 도중에 “누구든 5분 내로 세종시에 살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한다”고 자신감을 피력해 일단 안도했다. 명분과 의리, 현실과 변통에서 갈 길을 잃으면 '단순한 것이 많은 것을 설명'하는 오컴의 면도날 이론을 채택해 봄직하다.
단순화가 쉽지 않지만 국가균형발전은 늘 신선한 테마여야 한다. 추진 과정에서 '국가균형발전'을 급조했어도, 이것과 정부부처 이전이 지금 무관해 보여도 그리 가야 바른 길이다. 행정수도 프리테리아, 입법수도 케이프타운, 사법수도 블룸폰테인인 남아프리카공화국 모델, 법적 수도가 수크레이고 실질 수도가 라파스인 남미 볼리비아 모델은 필요치 않다. '이름(名)에 따라 위계가 나눠짐(分)'이 원래의 '명분'이다. 서울은 서울답게, 세종은 세종답게 명분과 실익의 조화를 이뤄내면 이보다 좋은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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