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선곡선]서글픈 서민

  • 오피니언
  • 청풍명월

[직선곡선]서글픈 서민

김은주ㆍ편집부 차장

  • 승인 2014-09-29 14:03
  • 신문게재 2014-09-30 17면
  • 김은주ㆍ편집부 차장김은주ㆍ편집부 차장
담뱃값이 또 도마 위에 올랐다. 값을 왕창 올릴 테니 알아서 끊으라는 정부의 강수에 애연가들의 곡소리가 높아만 간다. 정부는 종전보다 2000원 인상한 4500원에 판매해 성인뿐만 아니라 청소년들의 흡연율까지 잡겠다는 야무진(?) 계획을 내세웠다. 한 갑당 354원인 국민건강증진부담금을 내년부터 841원 올려 흡연치료 등에 쓰겠다는 입장이다. 비흡연자나 흡연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겐 딱히 반대할 이유가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의 실효성에는 의문을 던지는 이들이 많다. 가격 상승으로 일시적인 소비 감소는 가져올 수 있지만 그렇다고 기호식품인 담배 소비를 단박에 줄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반론이다. 때마침 정부의 복지예산이 비어가고 있는 시점이어서 세원 마련을 위해 흡연자들의 주머니를 터는 게 아니냐는 볼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담뱃값 인상에 따른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서민들로선 '부자 감세 서민 증세'로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몇 천원 인상을 둘러싸고 나라가 온통 찬반논쟁으로 시끄러운 가운데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감세 정책이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류성걸 새누리당 의원이 발의한 일명 '부자 할아버지법'으로 불리는 법안이 그것이다. 법안의 주요 내용은 손주 교육비로 쓰도록 1억 원을 물려줄 때 증여세를 면제시켜주자는 것이다. 경기부양과 가계 교육비 부담 경감이라는 취지를 내세웠지만 '부자 감세' 화살을 피하긴 어려워 보인다. 증여받은 날부터 4년 이내에 전액 교육에 투자해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지만 재산상속을 합법화하는 방법으로 쓰일 여지가 충분하다.

서민들이 느낄 상대적 박탈감은 불을 보듯 뻔하다. 1억 원을 학비에 쓰라고 선뜻 내줄 수 있는 조부모와 금연 후 담배값을 61년 모아야 1억 원을 손에 쥘 수 있는 서민들의 간극이야 말로 현재 대한민국의 단면이다. 손주 교육비로 1억 원을 쓸 수 있는 조부모가 얼마나 되느냐도 논란거리다. 노인 사이의 빈부격차가 OECD국 중 최악인 우리 실정에 비춰볼 때 빈곤 노인층의 상대적 박탈감도 간과할 수 없다. 법안의 모델이 되는 일본의 경우 노인층이 경제적으로 여유롭고 복지혜택도 잘 돼 있지만, 그와 상황이 다른 우리의 경우 소수 부유층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정책일 수밖에 없다. 이쯤 되면 끊으려던 담배를 다시 꺼내들고 싶은 이들이 어디 한 둘일까.

아이가 공부를 잘 하기 위해선 '할아버지의 경제력, 엄마의 정보력, 아버지의 무관심'이 필요하다는 말이 더 이상 우스갯소리가 아닌 세상이 될 모양이다. 그렇지 않아도 우려되는 교육의 빈부격차가 '법적'으로 대물림되고 '그들만'의 또 다른 감세 정책이 되는 건 아닌지. 여기서 치이고 저기서 치이는 서민 신세가 서럽다.

김은주ㆍ편집부 차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현장]3층 높이 쓰레기더미 주택 대청소…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2.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3. 전국 아파트 값 하락 전환… 충청권 하락 폭 더 커져
  4. 대전시, 12월부터 배출가스 5등급 차량 운행 제한
  5. 차세대 스마트 교통안전 플랫폼 전문기업, '(주)퀀텀게이트' 주목
  1. 더젠병원, 한빛고 야구부에 100만 원 장학금 전달
  2. 한화이글스, 라이언 와이스 재계약 체결
  3.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4. [현장취재]한남대 재경동문회 송년의밤
  5. 대전시주민자치회와 제천시 주민자치위원장협의회 자매결연 업무협약식

헤드라인 뉴스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환이야, 많이 아팠지. 네가 떠나는 금요일, 마침 우리를 만나고서 작별했지. 이별이 헛되지 않게 최선을 다해 노력할게. -환이를 사랑하는 선생님들이" 21일 대전 서구 괴곡동 대전시립 추모공원에 작별의 편지를 읽는 낮은 목소리가 말 없는 무덤을 맴돌았다. 시립묘지 안에 정성스럽게 키운 향나무 아래에 방임과 학대 속에 고통을 겪은 '환이(가명)'는 그렇게 안장됐다. 2022년 11월 친모의 학대로 의식을 잃은 채 구조된 환이는 충남대병원 소아 중환자실에서 24개월을 치료에 응했고, 외롭지 않았다. 간호사와 의사 선생님이 24시간 환..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22일 대전에서 열린 환경부의 금강권역 하천유역 수자원관리계획 공청회가 환경단체와 청양 주민들의 강한 반발 속에 개최 2시간 만에 종료됐다. 환경부는 이날 오후 2시부터 대전컨벤션센터(DCC)에서 공청회를 개최했다. 환경단체와 청양 지천댐을 반대하는 시민들은 공청회 개최 전부터 단상에 가까운 앞좌석에 앉아 '꼼수로 신규댐 건설을 획책하는 졸속 공청회 반대한다' 등의 피켓 시위를 벌였다. 이에 경찰은 경찰력을 투입해 공청회와 토론이 진행될 단상 앞을 지켰다. 서해엽 환경부 수자원개발과장 "정상적인 공청회 진행을 위해 정숙해달라"며 마..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