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충식 논설실장 |
신영아 연구원의 도움으로 보는 이 사진은 백제시대 아동용 소변기인 호자(虎子)다. (사진 오른쪽은 여성용) 산신이 호랑이 아가리를 벌려 오줌을 누었다는 기상을 새끼호랑이 형상 소변기로 재현시킨 백제의 어버이들은 훌륭한 교육심리학자들이다. 남의 소변기에 '샘'이라며 도발적 제목을 붙인 마르셀 뒤샹보다 예술 감각은 윗길이다. 기존의 것에서 의미를 끄집어내는 사람이 예술가이긴 하다. 기자의 유일한(?) 권능이 뉴스인지 아닌지 정하는 일이듯이 말이다.
어떻든지 변기가 유물이 되다니, 초등학교 때 여자친구의 일본식 집 화장실이 남아 있었으면 그 자체가 박물관 감이다. 긴 마룻장 끄트머리를 열면 화장실이었다. 집의 역사는 부엌의 역사이기보다 화장실의 역사다. 사찰 규모를 보려면 부도밭, 구시(솥), 뒷간 크기를 봐야 한다면 특히 뒷간에 관심이 많다. 수만 년 내려온 입식 배뇨습관이라면 더욱 관심이 간다.
부끄럽고 피할 '아랫동네' 토크가 아니다. 어느 교수가 신문사에 '오줌건강' 원고를 보내니 '소변건강'으로 둔갑했다며 한탄했다. '오줌을 점잖게 이르는 말=소변' 따위 풀이는 퇴출돼야 한다. 프랑스의 정복왕이 잉글랜드를 침공하고 프랑스어 소변(urine)과 대변(excrement)은 정중한 말로, 색슨어 오줌(piss)과 똥(shit)은 천박한 말로 분류한, 바로 그런 횡포다. 중도일보 검색창에 '사색의 향기인가'를 치면 호형호제 못하는 홍길동에 비유한 관련 글이 나온다.
가끔 대학의 연구를 보면 연구비가 아까울 때가 있다. 조준 각도에 따라 오줌 튀는 양이 다르다는 당연한 연구 결과를 무슨 물리학학회에 싣는 걸 보면 그렇다. 남녀 공용 입식 소변기나 민망한 U자 홈이 파인 남성용 입식 비데를 만드는 연구팀이 훨씬 똑똑하다. 국내 남성의 14.2%, 일본 남성은 30~40%, 유럽 남성의 60% 이상이 앉아 오줌을 눈다. 오줌 누는 소리 듣고 외상 준다는 옛말이 있지만, 그 무참한 중력가속도로 일평균 2300방울의 소변이 튄다. 해결책은 '앉아 쏴→변기 뚜껑 닫아→배수 밸브 내려'로의 전환이다.
일요일 아침, 작은 도서관을 순례하다 소변기에서 왕거미만한 파리를 발견하고 채신없이 스마트폰으로 찍었다. 네덜란드 스키폴 공항에서 인력(引力)을 조롱하는 사냥 본능을 자극해 사방팔방 흩어지는 오줌방울을 80%나 줄여 유명세를 탄 파리가 충청도에 속속 날아든다. 돈과 공권력 안 들여 행동 변화를 유도한 '넛지 효과' 사례다. 솔직히 벽에 걸린 이다재의 공예 작품에 눈이 팔려 파리를 실제 정조준하지는 못해봤다.
영화 '어바웃 슈미츠'에서 은퇴 후 아내에게 '앉아 쏴'를 강요받으며 달달 볶이는 장면이 떠오른다. 말하지 않아도 물, 음식, 성, 대소변은 일차적 문화요소다. 편안해야 한다. 월화수목 달빛걷기 코스에서 만난 반가운 화장실처럼 번뇌, 망상 씻고 상쾌하게 돌아서는 공간! 어찌 남자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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