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일제 강점기 때부터 각종 기념행사나 체육행사, 심지어 초등학교 아침 조회에서까지 애국심을 고취시킨다는 강제적 명분으로 계급사회와 전근대적 군국주의의 산물인 개회식을 진행해왔다. 해방기를 지나 70~80년대까지도 교련이 존재했고, 북한의 각종 도발위협과 세계 냉전기의 흐름은 이런 모습들을 자연스럽게 만들어 주었다.
그런데 생활체육이 시작된 90년대를 시작으로 우리나라에는 각종 생활체육 단체들이 생겨나고 정부의 대회 지원금이 확대되면서 종목별, 지역별(시·구·군), 연령별 각종 생활체육대회들이 개최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생활체육대회가 대회경비를 지원해 준 시장(구청장, 군수)의 생색내기용 행사가 되고 있다. 참가자들(시민)을 위한 행사인데 참가자들은 운동장에 세워놓고 자신들은 높은 단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각종 미사어구를 조합하여 근엄과 권위를 찾으려 한다. 심지어는 참가자가 모두 모이는 개회식을 개최하지 않으면 예산지원을 중단하겠다고까지 한다.
존경심이란 누가 시킨다고 우러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낮은 자세를 취하고 모범적 행동을 보일 때 생기는 것이다. 주최 측이든 초청인사든 참가자들이 그토록 싫어하는 잘 들리지도 않는 환영사, 대회사, 축사, 격려사라는 제목으로 얼굴을 비추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모습이 꼴사나워 보인다. 높은 단상에서 부하 지휘하듯 대하며 오와 열을 맞추라는 행사는 이제 과감하게 없어져야 한다. 특히 이들에게 잘 보이려고 더욱 근엄한 말투를 사용하는 사회자는 퇴출되어야 한다.
몇 년 전 강릉의 모 체육대회 개회식에서 선수들이 더위에 지쳐 주저앉고 쓰러져서 들것에 실려 나감에도 불구하고 축사를 계속하던 단상에 선수 한 명이 뛰어올라 행사용 마이크를 집어던지며 항의한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요즈음에는 “선수·임원여러분 제 인사는 유인물로 대신하고요, 열심히 하시고 건강하게 돌아가시기 바랍니다”라고 축사를 끝내는 어른에게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지고 함성과 휘파람이 날아드는 모습을 가끔 본다.
뙤약볕에 서 있는 선수들을 모두 스탠드로 올려 앉게 하고, 초청인사 모두를 참가자와 함께 관중석에 자리하게 하며, 국민의례는 최대한 간소화 시키고 참가팀을 일일이 소개하는 등 참가자들을 위한 축제로 만들어 주는 개회식을 개최해야 한다.
선거 때가 되면 엄청 친한 척 하면서 손잡기를 청하고 당선이 되면 표정을 바꾸어 높은 곳에 올라가 소개해달라고 권위를 떠는 단체장 및 의원들도 이제부터는 생각을 바꾸기를 부탁한다. 의원 끝나면 평범한 시민인 것을 왜 그렇게 대접받으려고 운영자들에게 의전을 제대로 안한다고 괴롭히는가? 또한 운영자들도 초청 인사들을 일일이 소개하며 스스로 자신들의 면을 세우는 일을 중단하길 바란다. 정말 몰지각한 인사들은 자신을 소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운영자들을 욕하고 가기도 한다. 눈치 있는 정치인들은 말을 짧게 하거나 참가자들을 앉으라고 말하지만, 그 말조차 듣고 싶은 참가자는 별로 없어 보인다.
생활체육 환경과 인식의 변화는 이미 오래됐다. 대회에 참가하여 대회장의 분위기를 느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선거에 나가기 전에는 낮은 자세로 시민을 모시겠다고 하고서, 당선이 되면 높은 곳에서 권위를 내세우려는 이중적 모습이 행사장에서 사라지고 참가자를 위한 진정한 스포츠축제가 개최되기를 바란다.
그런데 시체육회에서는 회장을 대신해 각종 행사장을 다니며 개회사, 축사를 하는 게 주된 역할로 결재권도 없고 연간 4000만 원 이상의 인건비를 들여가며 상근부회장 제도를 유지하려고 한다. 조직을 무력화시키고, 직원들을 눈치 보게 하며, 관료적, 권위적, 보은적 사고에서 시작된 대전 체육발전의 발목을 잡는 인사는 중단되어야 한다. 그리고, 진심으로 대전 체육을 발전시키고 싶다면 오랜 기간 체육회, 생활체육회에서 일해 온 직원들을 사무처장으로 임명하라. 정치적인 상임부회장의 존재는 대전 체육의 최고 어른인 체육회, 생활체육회 처장의 위상을 추락시키는 것이다. 체육회, 생활체육회 사무처장은 대전 체육의 전후를 알고 대전체육인을 이끌 수 있는 최고의 행정가를 모셔야 하는 자리다.
<충남대 스포츠과학과 교수·대전체육포럼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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