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 민사41부(부장판사 정창근)는 18일 현대차 사내하청 근로자 994명이 현대차를 상대로 낸 근로자 지위확인 소송을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994명 중 신규채용된 40명과 소를 취하한 20명을 제외한 934명이 승소 판결을 받았지만 법리적으로는 이들도 모두 파견직에 해당된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이번 판결은 대기업 등이 관행적으로 진행해온 불법 파견을 폭넓게 인정한 것이어서 남다른 의미가 있다. 단순히 서류 상으로 하청 업체와 도급 계약을 체결했다고 해서 사업주의 고용 책임이 사라지는게 아니라는 것을 재판부가 재확인한 것이다.
재판부는 근로자가 사업장의 파견직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단순한 계약의 명칭이나 형식에 구애받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근로관계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즉, 서류상으로 산하 하도급 업체에 소속돼 있다고 해도 실제로 근로관계가 인정된다면 해당 사업장에 파견됐다고 보는게 맞다는 것이다.
이같은 논리는 대법원이 지난 2010년 7월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 최병승씨가 해고 처분에 반발해 제기한 소송에서 최씨를 현대차 노동자로 인정하는 판결 내용에 영향을 받았다.
특히 재판부는 현대차와 사내협력업체 사이에 체결된 도급계약이 업무 범위에 대해 아무런 내용이 없고, 담당 공정 역시 현대차의 필요에 따라 수시로 변경된 점에서 실질적인 업무 지시는 현대차 주도로 이뤄졌다고 판단했다.
현대차는 사내협력업체를 관리하기 위해 업무표준까지 마련해 시행했고, 하청 근로자들의 근무시간 이동속도 등 기초질서에 대한 감독 지침을 제정하기도 했다.
또 현대차가 하청 근로자들의 고충을 직접 상담해서 해결하거나 모범사원을 선정해 표창장을 수여하기도 했으며, 현대차가 하청업체에 물량을 배치하고 작업지시를 한 점 등을 등을 고려하면 실질적으로 현대차 파견 근무에 해당된다고 판시했다.
즉, 현대차와 사내협력업체 사이에는 묵시적으로 근로자 파견 계약 관계가 성립했다는 것이다.
파견근로자보호법에 따라 파견직으로 2년이 경과하면 직접 고용이 간주되는 만큼 근로자들은 대부분 정규직으로 인정되며, 그에 따른 임금차액도 지급해야 한다고 재판부는 결론 내렸다.
이번 판결에 따라 실제로 사업주와의 근로관계가 어떠했는지가 파견직 여부를 가름하는 중요한 잣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에서는 일제히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참여연대 김남희 복지노동 팀장은 “대법원 판결을 무시해왔던 현대차의 잘못된 행태에 대해서 법원에서 다시한번 올바른 지적을 했다”며 “이번 판결을 계기로 불법파견을 제대로 관리감독을 하지 않았던 관행에 대해서도 시정하고 관련 검찰조사가 이뤄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한국지엠, 기아자동차, 삼성전자서비스의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유사한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만큼 이번 판결 결과가 영향을 미칠 전망이어서 산업계에 미칠 파장은 커질 것으로 보인다.
노컷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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