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때쯤이면 들녘에서도 이름 모를 풀과 꽃들이 나름 가을 결실을 준비하고 있다. 길경이, 씀바귀, 들국화, 코스모스도 가을 무대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다. 길가와 숲길에는 어릴 적 많이 갖고 놀았던 수크령들이 있다. 어릴 때 친구들과 재미있게 갖고 놀던 풀의 이름이 수크령인지는 최근에서야 알았다.
디지털 매체를 통한 지식 정보의 힘이 크다. 지식 정보에 따르면 수크령은 햇볕이 잘 드는 양지 쪽 길가에서 잘 자라는데, 길갱이, 랑미초(狼尾草)라 부르기도 한다. 잘 크면 80㎝ 정도까지 큰다고 하는데 보통은 30㎝정도 자라난다. 길가에서 질경이처럼 짓밟히면서 자라다보니 줄기가 질기고 뿌리도 뭉턱뭉턱 사방으로 퍼져있다. 이 수크령은 어린아이들의 즐거운 놀이감일 뿐만 아니라 주전부리감이었다.
수크령의 줄기는 질기면서도 통통했다. 수크령은 하나씩 뽑을 수 있었는데, 뿌리는 억세고 사방으로 퍼져있기 때문에 뿌리 채 뽑기가 어려웠다. 물론 뿌리째 뽑을 수 있기도 하지만 어린 힘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어쨌든 수크령의 줄기를 잡고 온 힘을 다하여 뽑으면 줄기가 하나씩 똑똑 덜어져 나왔다. 바로 뿌리와 맞닿은 부분이 깨끗하게 똑 떨어져 나왔는데,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었다. 이 밑 부분은 뽀얀 흰색을 띠면서 도톰하였다.
이 도톰한 부분을 입에 넣고 잘근 잘근 씹으면 달짝지근하면서 씹히는 맛이 그만이었다. 그 맛에 줄기를 한 줌씩 뽑아가지고 다니면서 친구들과 나누기도 하면서 주전부리를 하였다. 이보다도 더 즐거운 일이 있었다. 수크령이 길가 양쪽에서 튼실하게 잘 자라고 있어서 그 질긴 줄기를 친구들 몰래 묶어 올가미를 만들어 놓고 친구들을 불러 모아서 그 길로 힘껏 뛰어가면 줄기로 만든 올가미에 발이 걸린 친구들이 넘어지면 그렇지 않은 친구들은 박장대소하며 즐거워하였다.
수크령은 한 곳에서 많이 자랐기 때문에 푹신푹신하여 넘어져도 크게 다치는 일은 없었다. 여자 아이들은 긴 줄기로 머리 땋는 놀이도 하곤 하였다. 그때는 그렇게들 시간가는 줄 몰랐다.
정동찬ㆍ국립중앙과학관 과학사연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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