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규 행정자치부장(부국장) |
그렇다. 작금의 서구의회 실상이다. 비난에 비난을 퍼붓고, 악다구니를 해도 소용없다. 그리곤 서로 잘났다고 법대로 하자는 꼬락서니는 어찌해야 할까. 기초의회 폐지론에 다시 불을 지피고도 이렇게 떳떳할 수 있는 힘은 또 어디서 나오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의회를 열고 서로 싸움질하면서 하는 소리는 참으로 기막히다. 의원들간 잘잘못을 두고 서로 네탓이란 책임공방전이라도 벌이면 그래도 볼만할 텐데 막장 의회에 대한 방송뉴스를 접하고 하는 말이 누가 잘 나왔고, 누구는 좀 그렇더라는 건 무슨 상식으로 이해해야 할지 할 말을 잃게 한다. 오죽했으면 다른 자치구 기초의원들이 혀를 찰까.
기초의회. 대한민국의 기초의회는 서울과 대전을 비롯한 6개 광역시, 충남 등 9개 도 행정구역의 시, 군, 구에 설치된 의회를 말한다. 기초의회의 시발점은 1910년 조선총독부에서 실시한 평의원 제도지만 최초로 기초의회 의원을 선발한 것은 1960년이다. 이후 이듬해 5월 폐지됐다 1991년 5월 부활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1991년 당시 기초의원은 정당공천 없이 무소속으로 출마해 임기가 없는 명예직으로 지방의회에서 조례를 만들거나 예산을 심의ㆍ확정하고, 행정감시권과 조사권 등을 통해 자치단체의 살림살이와 행정업무를 감독하고 감시하는 게 기초의원의 역할이다. 풀뿌리 자치제의 부활이라며 높은 기대감과 설렘으로 개원한 기초의회는 20여년의 시간을 거치면서 변질에 변질을 거듭해왔다. 그때마다 풀뿌리에 근거해 설익은 개선책으로 넘어가기 일쑤였다.
감시와 견제를 위해 명예직으로 출발한 기초의원들은 어느새 권력의 자리에 앉아 지방토착비리의 온상으로 자라왔다. 부랴부랴 보수직으로 전환을 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다. 이제는 한 술 더 떠 유급비서관을 달라고 한다.
생각해보자. 기초의회 의원들이 유급비서관이 필요한 만큼 조례를 제정하고, 규칙을 만들고 제대로 된 역할을 열심히 했을까? 모르긴 해도 그건 지역민들의 기대감에서만 그랬을 거라는 생각은 너무 이기적인가.
말 나온 김에 물어보자. 지난 6ㆍ4지방선거에서 각 지역구에 출마한 기초의원에 대해 얼마나 알고 투표에 임했는지? 주위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누가 누군지 잘 알지도 못하고 투표장에 가서 기표했다는 게 대다수다. 또 이렇게 선출된 기초의원들이 의회에서 무슨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아는 주민은 얼마나 될까? 관심도 없고 딱히 알 방도도 없는 게 현실이라면 새삼 기초의회의 역할을 강조해도 허공의 메아리보다 못하다.
주민들을 위해 열심히 조례와 규칙 등을 만드는 줄 알았는데 밥그릇싸움과 외유성 국외여행 소식만 듣는 주민들의 눈에 비치는 기초의회라면 관심을 못 받는 게 당연하지 않나.
아무런 일도 않고 의정비만 현실화시켜 달라고 하고, 유급 비서관을 채용해달라는 낯부끄러운 소리를 하는 기초의회를 두고 여전히 풀뿌리로 감싸야 하는지 모르겠다.
정치권을 넘어 기초의회의 최일선인 주민들까지 기초의회 폐지론을 들고 나왔다는 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모든 책임은 기초의회가 지고 가야 한다. 기초의회 의원들이 순전히 만들어 왔기 때문이다.
들녘의 잡초를 보라. 한해살이 잡초일지라도 손길이 닿지 않는다면 거대 풀밭을 형성한다. 그리고 여러해살이 잡초라면 한해만 지나도 나무와 버금갈 만큼 깊은 뿌리를 내려 뽑아내려면 진땀을 흘리게 한다. 그런데 20여년간 지극한 정성과 보살핌으로 지켜온 풀뿌리라면 분명히 사람들에게 필요한 제대로 된 나무로 자라 100년, 1000년 보호수로 지켜질 것이다. 그렇지 않고 아무 쓸모 짝에도 없는 나무로 자란다면 과감히 베어낼 수밖에…. 지금의 서구의회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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