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덕구 미호동에 위치한 취백정. |
우리 선조들은 벼슬길에서 물러난 뒤 관직에 나가지 않고 처사로 지내면서 소박한 정자 한 칸을 마련하여 학문과 더불어 글도 쓰고 제자를 길러냈다. 또한 더위를 피해 차(茶)를 마시며 정치를 논했고 사람의 근본을 깨달으며 몸과 마음을 닦았다. 정자와 누각은 선비의 고장 대덕에도 여러 곳에 남아있다.
방학을 맞이하여 두 딸들을 데리고 취백정이 있는 대덕구 미호동으로 향했다. 입추도 지나고 비가 내린 다음날이라 그런지 하늘이 높고 햇볕이 청명했다. 이곳은 예전에 멀리서 친구가 찾아와서 도심을 벗어나 대청댐 방향으로 드라이브를 할 때 취백정(문화재자료 제9호)이란 안내판 이름만 보고 “취가 많은 정자인가?” “술에 취하는 정자인가?”라고 친구랑 궁금해 하며 지나쳤던 곳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취백정의 한자음을 찾아보니 '취'자는 푸르다, 비취색, 물총새의 의미가 있고, '흰 백'자는 희다, 빛나다, 밝다 등 여러 가지 뜻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취백정의 의미를 '푸른 산 푸른 물에 밝은 햇살이 비추는 정자' 라고 해석을 해보았다. 그런데 송규렴의 증손 송재희의 호가 취백정이었다고 한다.
신탄진에서 대청댐 방향으로 올라가다보면 '금강이 호수 같고 아름다워 미호(渼湖)라는 이름을 지었다'라는 미호동 마을 유래비가 도로 우측으로 보이고 취백정 안내판도 보였다. 마을로 들어서니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어 차를 세우고 콩밭 옆 시멘트 길을 지나 민가사이로 난 오솔길을 따라 돌아 오르니 담장 안에 자그마한 기와집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은 조선시대 학문이 뛰어나 회덕의 동춘당, 우암과 함께 삼송(三宋)이라 불리 우는 제월당 송규렴(1630~1709)이 제자를 모아 가르치던 곳이라 한다. 송규렴은 조선중기 문신으로 문과에 급제하여 충청도 관찰사와 예조참판을 지내고, 예조판서, 대사헌 등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퇴하였고, 80세 때 지돈녕부사에 올랐다. 문집으로《제월당집(霽月堂集)》이 남아 있다. 돌아가신 후 문희(文僖)의 시호가 내려졌다.
담장 안 처마 밑에는 검은색 테두리를 두른 흰 바탕 위에 검은색 글씨가 바람결에 흔들리듯 양각된 작은 현판과 툇마루 안쪽으로 송규렴선생이 지었다는 상량문이 걸려있었다. 취백정 건물 뒤로 저 멀리 구룡산 자락이 병풍처럼 펼쳐지고 그 밑으로 잔잔한 호수 같은 금강이 흐르고 정면으로 마을이 내려다보인다. 지금은 건물 앞쪽으로 울창한 대나무 숲과 감나무가 전경을 가리고 있지만 건물 사방으로 크고 작은 창문이 많았다. 창문을 모두 열어 특히 부엌 위의 다락방 같은 누각에 앉으면 그 옛날 미호에 비친 푸른 산이 더 푸르고 푸른 물이 더 푸르게 보여 자연과 하나 되어 시 한수가 절로 떠오르며 온갖 시름이 사라졌을 것만 같다. 문이 잠겨있어 들어가 보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학문의 열정과 지조 높은 선비정신이 숨 쉬는 이곳에서 앞으로 우리가 지켜야할 예의와 겸손을 함께 생각해보며 함께 한 딸들의 예의와 겸손도 한 뼘 더 자라길 소망해 본다.
김영임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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