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선 편집부장 |
30년전 어느 봄날, 이름모를 항구에서 오륙도 유람선에 올랐던 소녀는 높은 파도가 두려워 아버지의 손을 꼭 잡았다. 동쪽에서 보면 여섯 봉우리가 되고 서쪽에서 보면 다섯 봉우리가 된다는 신기한 이야기를 들려주던 아버지는 나지막하게 노래를 부른다.
“꽃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건만/형제 떠난 부산항에 갈매기만 슬피 우네/오륙도 돌아가는 연락선마다/목메어 불러 봐도 대답 없는 내 형제여….”
모서리가 너덜너덜해진 사진처럼, 가슴을 물들이는 그날의 짭짤한 바다내음. 딸 아이가 그때의 내 나이가 되고 아버지의 뒷모습이 한없이 작아보이는 오늘, 추억은 까마득한 옛날 이야기가 돼버렸다.
아버지의 존재가 가정의 중심이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 시대의 수많은 아버지들이 그러하듯, 아내와 자식을 위해 일생을 일해야만 했고 책임감과 삶의 무게를 어깨에 짊어지고 살아왔다. 그러나 지금 현실은 어떠한가. 가정의 위계질서와 권위가 사라져 가는 사회, 그렇게 당당하던 아버지들은 지금 다 어디로 가신 것일까.
대전과 충남지역에서 신고된 노인학대가 매년 300여건에 이르고, 학대는 주로 가족에 의해 이뤄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5년 전 행정상 사망자가 된 70대 노인이 대전에서 노숙인으로 발견됐으나, 그의 가족은 아버지를 부양할 의사가 없다며 '행정상 사망처리'조차 바로잡기를 거부해 가족의 품에 돌아가지 못한다는 본보 보도는 이유와 사정을 들여다보지 않고서는 이해하기 힘든 사건이다. '상감님도 늙은이 대접은 한다'는 속담이 있다. 노인을 공경하는 곳이야말로 살 만한 곳이다. 인간은 누구나 노인이 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또 하나의 기억을 떠올려 본다. 무엇을 잘못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눈물 콧물 쏙 빠지게 야단을 맞던 날. '난 다리밑에서 주워온게 틀림없어. 언젠가는 친 부모가 찾아올거야'라고 위안을 삼았더랬다. 장롱위에 가지런히 놓인 회초리는 '사랑의 매'라는 포장하에 체벌을 객관화했던 무시무시한 존재였다. 회초리는 손이나 발로 아이들을 때리는 것을 막아 주며 감정이 실리지 않도록 도와준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이러한 행동은 아이들을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고 때려서라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르치겠다는 그릇된 교육방식이며 부모에 대한 반발심과 상처를 안겨줄 수 있다. 때리는 사람은 사랑이라고 말하지만, 맞는 아이들은 학대일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아동학대의 주체는 친부모가 80%가 넘는다는 통계를 보며 배우 김혜자씨가 전세계 고통받는 아이들을 돌본 뒤 펴낸 책 제목이 생각난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우리 주변 등잔 밑 어딘가에서는 지금도 제2의 '울산 서현이 사건'과 '경북 칠곡 계모 사건'과 같은 끔찍한 아동학대가 자행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듯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오는 9월 29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아동학대로 떠들썩 했던 1년 전 분위기가 무색하게도 특례법은 '반쪽' 위기에 처했다. 처벌 강화규정 외에 사후관리 조치 내용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인력과 예산이 필요하지만 정부는 6개월째 묵묵부답이다.
노인학대 예방사업은 더 멀고도 험난하다. 매년 3500건씩 발생하는 노인학대 피해자를 학대 행위자로부터 격리시킬 법적 조항조차 없다는 주장이 쏟아지지만 대응책은 미흡하다. 아동특례법 수준으로 노인복지법을 강화해 재발방지를 위한 교육과 프로그램 마련하고 가해자가 이를 의무적으로 이수하게 만들어야한다는 지적또한 미래가 불투명한 아동특례법과 함께 제자리걸음이다.
우리 사회의 폭력과 학대의 문제는 물질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 마음의 문제다. 마음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되며 특히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에서 시작된다.
맞고 자란 아이들이 모두 부모들을 때린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사랑받고 자란 아이들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분명하다. 아들과 딸에 의한 노인학대에 화를 내기에 앞서 그 아이들이 왜 그렇게 됐을지 한번쯤 곰곰이 생각해 봄직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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