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밭도서관 내 노인전용공간인 '청록실' 내부 모습. 오른쪽 앞쪽 소파에 앉은 사람이 2004년 청록실이 만들어졌을 때부터 자원봉사를 해 온 89살의 이용운 실장이다. |
2000년부터 한밭도서관을 자주 이용한 필자의 눈에는 많은 젊은이들 속에 단정히 앉아 책을 읽거나 뭔가를 메모하며 열중하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마치 한 마리 학처럼 아름답게 보였다. 그분들은 늘 앉던 자리에 앉았기 때문에 가끔 빈 자리를 보게 되면 걱정이 되곤 했다. 그렇다고 누구에게 안부를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2004년 4월에 만들어진 청록실은 60세 이상의 어르신들이 책을 보고 인터넷도 하면서 담소도 나눌 수 있는 아늑한 공간이다. “늘 푸른 마음을 지니고 젊게 살면서 이용하라”는 뜻이 담겨있다.
청록실이 만들어졌을 때부터 자원봉사하고 있는 해암 이용운(89) 실장은 6·25전쟁 때 참전해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 나온 것을 제일 좋은 일로 여긴다고 한다. “10년에 1할은 사회에 반환한다는 생각으로 봉사하는 거야. 십 년이면 사회적으로 신세진 거 어지간히 갚았다고 생각해.” 작년에 9000시간 봉사했다고 안전행정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대한민국 문인화 초대작가이기도 한 해암 실장은 해마다 정성껏 그린 200여 장의 연하장을 지인들에게 나눠주는데 그 수고와 비용이 만만치 않았을 것 같다. “거의 한 달 이상 걸려. 그런 걸 뭘 따져. 내 성의지. 정표(情表)야, 정표.”
올 9월이면 자서전이 출판된다. '여생의 쉼터 1번지'라는 책제목을 듣고 나니 그곳이 어딜까 궁금했다. “어디긴 어디야, 봉사하는 데가 1번지지. 아휴, 그걸 5년 썼어. 글도 짧은 사람이. 맨날 썼다, 고쳤다, 뺐다….”
1994년부터 도서관을 이용하고 있는 장기영(81) 씨는 청록실이 아닌 제2자료실에서 책을 본다. “청록실은 자료가 한정되어 있어서 불편해. 또 매일 나오는 게 아니고 일주일에 두 번 나오거든.” 장선생은 도서관이 좋은 점을 “우선 마음에 양식이 되고, 시간 보내기 좋고, 강의도 들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건강상의 이유와 버스 타기가 불편하여 올해까지만 다니겠다고 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내년부터는 집에서 자서전을 쓰려고 해. 지난번에 자서전쓰기 강좌를 들었어. 자식들이 책도 내주겠대.”
청록실에서 나오는 낯선 얼굴의 두 분들을 인터뷰했다. “컴퓨터가 고장나서 PC방으로 가면 담배 피우는 애들이 많고 허연 머리로 들어가기도 미안해서 얼른 나오게 되는데, 도서관 다니는 친구 덕분에 좋은 곳을 알게 되었으니 앞으로 자주 이용해야겠다”고 말했다. 어린아이처럼 친구 손을 꼭 잡고 도서관 여기저기를 안내받는 68살 두 어르신의 모습이 정겹게 보였다.
한 여름의 태양이 내리쬐는 한밭도서관 후문 큰 나무 그늘에 앉아서 그분의 열변을 들으며 박수를 보냈다. 어르신들은 각자 자기 자리에서 나름의 문화를 만들며 지켜가고 있었다.
정애령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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