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에 위치한 척추전문병원인 세우리병원의 정호 원장(55)이 대전, 충남, 충북에 각 1곳씩 간호고등학교를 세워 의료 인재 양성을 위한 육영사업 의지를 밝혀 주목받고 있다. 실력 있는 의사로 기억되고 싶다는 정호 원장, 잘 낫게 해주는 의사가 최고라고 본다는 그를 지난 주말 서구 둔산북로 36번지에 위치한 세우리병원과 인근 커피숍에서 만나 시골 소년의 근면 성실, 은근과 끈기로 이뤄낸 인생 성공스토리를 들어보았다. <편집자 주>
▲ 정호 세우리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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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 원장은 1960년 서산시 읍내동 읍내리에서 정미소와 염전, 농사일을 하시던 부모님의 6남2녀중 막내로 태어났다. 부모님이 다양한 일들을 많이 하셨지만 자녀 수도 많았고 사업도 굴곡을 겪다보니 어려운 시기를 겪기도 했다. 부모님의 늙은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던 정호 원장은 부모님을 위해 성공해야겠다는 다부진 결심을 하게 됐다.
아버지와 겸상하는 유일한 막내아들이었던 그에게 아버지는 늘 '내가 죽으면 너를 돌봐줄 사람이 없구나' 생각하시고 불쌍해하셨다. 그런 아버지가 그의 나이 열두살때 위암으로 작고하셨다. 어머니 역시 아버지 뒤를 이어 위암으로 돌아가시자 정호 원장은 해산물이 풍부한 지역이다보니 젓갈문화가 발달해 짠 젓갈 섭취로 위암, 간암 환자가 많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아홉살때부터 아버지가 보시던 신문을 즐겨 읽던 정호 원장은 부춘초와 서령중학교 다니던 시절엔 무관의 제왕인 기자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충북고에 다닐 당시 문과생이었던 정호 원장은 “제가 머리가 좋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끊임없이 노력하는 지구력으로 승부해왔다”고 말했다.
▲경희대 의대에 진학해 의사의 길로=어머니마저 돌아가시고 고3후반기 10월 예비고사 치르기 전 서울에서 대학 다니던 형과 누나들이 살고 있던 은평구 신사동에 올라간 그는 학원을 다니면서 권투가 유행하던 그 시절 권투에 매료되기도 했다. 모 대학에 응시했다가 낙방한 그는 재수끝에 문과에서 이과로 전향해 경희대 의대와 한양대 의대를 모두 합격했다.
결국 경희대 의대를 선택한 그는 경희의료원에서 인턴을 마치고 서산시 부석면 서산 AB지구 정주영 목장에서 보건소장으로 군의관 생활을 하게 됐다. 정호 원장은 1989년 제대 후 을지의대병원에서 레지던트를 거쳐 신경외과 과장으로 일하다가 5년만에 독립, 15년 전 개업의의 길로 들어서 수많은 역경과 난관을 딛고 오늘에 이르게 됐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운이 많이 따라줘서 내 특성과 성격에 맞는 길을 제대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영화 출연을 제안받기도 했던 시절=친구따라 강남간다고, 경희대 동문이었던 친구 곽재용 영화감독을 따라다니며 충무로를 맛보던 시절도 있었다. '엽기적인 그녀'로 유명한 곽재용 감독이 1989년 이미연과 옥소리, 강석현, 이경영이 나왔던 로드무비 영화 '비오는 날의 수채화'로 감독 데뷔할 당시 신성일 아들 강석현을 쫓아가는 총격전 장면에서 배에서 뛰어내리는 배역을 제안받기도 했지만 거절했다. 숫기 없고 부끄럼 잘타는 그에게 배우는 적성에 맞지 않아 고사하고 영화판을 떠났다.
▲개원의 시절-의료사고 위기에 처하다=그러던 중 우연히 서울 지하철역에서 방사선과 전문의 대학 동창을 만난 그는 친구의 제안으로 92년 아무 연고도 없던 대전에 와 을지의대병원에서 레지던트 트레이닝을 밟게 된다. 대학교수로 성공하고 싶었지만 한계에 부닥치자 통증을 주사로 치료하는 시술인 '블록'만 믿고 겁없이 개원의의 길로 접어들었다. 장인 어른이 충북대 공대 교수이자 충북대 총장 출신으로 처가가 매우 부유한 편이었지만 처가에 전혀 의지하지 않고 오로지 선택과 집중만으로 외길을 달려왔다.
정호 원장은 2000년에 시청 앞에 450평 병원을 개원했다. 하루에 150명씩 환자가 몰리던 시절, 낮에는 내원 환자를 진료하고, 밤에는 매일 1명씩 4~5시간이 걸리는 수술을 진행했다. 환자는 점점 늘고 개업 1년만에 700평으로 확장해 오픈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계속 잘 되던 병원은 2002년에 터진 의료사고로 큰 위기를 맞게 된다.
척추체성형술을 받은 할머니가 일주일 후 패혈증으로 위중해지는 사건이 발생, 충남대병원에서 궤양성 대장염 수술을 받게 되자 할머니의 자녀들은 정호 원장에게 1억8000만원의 보상금을 요구했다. 1주일간 병원앞에서 화염병을 터뜨리고, 병원 기물을 부수고, 시끄러워서 도저히 수술을 할 수 없는 상황까지 격렬하게 데모하던 이들은 법원에서 집행정지 가처분신청을 내린 후에야 집회를 멈췄다.
정호 원장은 “이때가 병원 경영하면서 가장 힘든 고난의 시간으로 기억된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원 환자들은 끊임없이 병원을 찾아와 신기할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의원급 최초로 MRI 도입=정호 원장은 2007년 의원급에서는 최초로 MRI를 들여놓게 됐다. 연구단지 벤처기업에서 100억원의 연구비가 들었다는 MRI를 임상실험 차원에서 8억원에 구입한 것이 세우리병원의 기초를 세워준 효자가 됐다. 15년 동안 쉬지 않고 달려준 덕분에 월 평균 500여명의 환자가 MRI의 혜택을 봤다.
정 원장은 최근 17억원을 주고 독일에서 최고급 신품종 MRI를 도입해 왔다.
더 많은 환자들이 혜택을 보게 되면서 이 역시 효자상품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의료의 꽃은 '수술'-통합과 통섭의 학문으로 성공하다=환자가 아프고 괴로워하면 의사는 좌절한다. 그래서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최종적으로 선택하게 되는 것이 수술이기 때문에 의료의 꽃은 '수술'이라고 할 수 있다.
문과 고등학교를 다니고 이과 대학을 다닌 그는 문과와 이과를 아우르는 통합과 통섭의 학문을 했던게 오늘날 성공의 주요 비결이라고 생각한다.
정 원장은 “아이들 교육에 있어서도 착한 심성을 가진 아이에게는 악한 영화, 폭력 영화 비디오를 보여줘서 착하게만 세상을 살 수 없음을 가르치고 세상 살아가는 힘을 키워주고, 악한 기질의 아이에게는 착한 영화를 보여줘서 심성을 순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술을 못마시는 체질이 의사로선 천만다행=정호 원장은 경희대 선배인 염홍철 전 시장 어머니의 주치의다. 89세인 염 시장의 어머니는 정호 원장에게 두차례의 수술을 받고 지금 건강하게 지내신다.
오전 7시면 출근해서 입원 환자들을 회진하는 정 원장은 아침이 밝기를 눈이 빠지게 기다리는 100여명의 환자들 회진을 돌기 위해 아침 일찍 출근할때마다 “세상을 내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거리면서 의욕이 샘솟는다”고 했다.
앞으로 2, 3년후 갈마동의 계룡병원 자리로 이전할 계획을 밝힌 정 원장은 침체된 갈마동 상권을 활성화시키는 효과도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30년동안 수술환자가 거의 3만명에 이르는 정 원장은 “로컬병원의 특징은 수술의 결과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되는 만큼 대학병원보다 훨씬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소주 석잔, 맥주 석잔, 폭탄주 한잔이 주량인 그는 술을 못하는 것을 천만다행으로 생각한다. 밤새 과음을 하면 다음날 절대 수술을 할 수 없을 텐데 술을 못하는 체질상 늘 아침 일찍 출근해 환자들 회진을 돌면서 맑은 정신으로 수술을 할 수 있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지구력과 집중력과 일에 대한 긍지와 성취감으로 사업적으로도 성공하면서 수술에 대한 자신감도 붙었다.
척추 내시경으로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독일의 울프 척추내시경 수술 자문의인 정 원장은 “일본의 히다치와 도시바는 잃어버린 20년 일본 경제속에서 사라져가고, 미국은 게으르고 느슨한 반면 독일은 독일사람 특유의 근면함 덕분에 과학이 많이 발달해서 지금도 의료기는 독일 제품을 최고로 친다”고 했다. 정 원장은 “지금 삼성은 휴대폰에 이은 다음 먹거리로 MRI 등 의료기에 투자하고 있다”며 “메디슨 회사를 인수해 기술을 가져오고 기술 개발 회사를 인수중”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한국인은 근면, 성실한데다 임기응변에 능해 서양이 개발한 것을 가져다가 새로운 것으로 응용할 수 있는 뛰어난 DNA를 갖고 있다”며 “그게 바로 한국인의 근성이자 저력”이라고 말했다.
▲30년간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한우물 파기=15년전 개업할 당시부터 지금까지 정 호 원장은 사업과 세무, 진료, 수술, 인사 문제 등 많은 고난과 역경과 어려움이 있었지만 3년전부터는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30년간을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한우물을 파면서도 선택과 집중의 변화를 주었다. '불광용불급(狂用急)'이라는 말이 있다. 미치지 않으면 도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필요는 발전의 어머니이고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한다. 집중하다보면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게 된다. 집중하다보면 자다가도 아이디어가 나온다.
정 원장은 “오늘날 제가 있기까지 선택과 집중이 정말 큰 역할을 했는데 초3때 어머니가 저의 신수를 보신후 '우리나라를 먹여살릴 수있는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해주신 덕담이 오늘날의 저를 있게 했다”고 말했다.
▲신호범 박사와의 인연=미 워싱턴 상원부의장 신호범 박사와의 인연은 5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성학원 이사장인 김신옥 목사와의 친분으로 대전을 방문했던 신호범 박사는 수양아들처럼 가까운 도완석 복음신학대학원 교수의 안내로 정호 원장을 찾아와 불편한 허리를 치료받았다. 그때부터 한국에 올 때마다 정호 원장은 신호범 박사의 주치의는 물론 대전의 지인들을 초청한 자리의 만찬을 책임지는 호스트를 자처했다. 소탈하고 꾸밈없는 성격의 두 사람은 부자지간처럼 가까운 사이가 돼 지난해엔 정호 원장이 신호범 박사의 초청으로 미국 워싱턴을 방문하고 오기도 했다.
▲대전시문화상 수상=고 정남 제이엔프로 대표이사와 함께 동남로타리클럽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봉사활동에 동참해온 정호 원장은 “더 많은 봉사활동을 하며 살고 싶지만 경영과 수술과 진료를 도맡아 책임지고 있는 상황에서 수많은 환자들과 병원가족들을 생각하면 병원을 잠시도 비울 수 없는 상황이라 안타깝다”고 말했다. 정 원장은 “인생을 살면서 제일 큰 보람은 그때 그때 순간적으로 다가오는 성취”라며 “대전시생활체육회부회장을 하면서 지난해 대전시 문화상 체육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일 역시 즐겁고 보람된 일이었다”고 말했다.
정 원장은 “사업이든 의학이든 목표점을 성취했을때의 만족감은 나의 존재를 일깨워주는 기쁨”이라며 “의료와 사업에서 느끼는 성취감이 크기때문에 매일 아침이 기다려지고 설레고 즐겁다”고 말했다.
▲효자상품 냉동의료기와 육각수=정 원장은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게 성취감”이라며 “병원이 불황기에 있을때 고액을 주고 벤처기업을 통해 들여온 냉동의료기가 새로운 돌파구가 되어 시력도 좋아지고 건강해지는 효과덕분에 난치병 치료에 한걸음 다가선 느낌”이라고 말했다.
1년 반 동안 매일 하루에 3분씩 냉동의료기에 들어가 있다가 나온 정 원장은 지금도 노안이 오지 않았고 지방도 분해되어 날씬해진 효과를 톡톡히 봤다. 부수적으로 냉동기연구소를 통해 영하 200도의 냉동의료기에서 나온 육각수 물맛이 너무나 좋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후 정 원장은 수많은 암 환자와 지인들에게 매주마다 육각수 물을 생수병에 담아 20개들이 물 상자를 만들어 보내주는 선한 봉사를 하고 있다. 이 물이 피부에도 좋고, 변비에도 좋고, 피곤함도 모르게 하고, 소변이 강하게 나오는 효과를 정 원장 본인이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다.
정 원장은 “육각수 시장이 확대될 것”이라며 “물을 지배하는 나라가 세계를 지배하기 때문에 한국은 물사업을 해야 된다”고 제안했다.
▲간호고등학교 세워 육영사업 할 계획=정 원장은 “대전, 충남, 충북에 간호고등학교를 세워 육영사업을 펼칠 계획”이라며 “의료사업보다는 육영사업이 제 인생의 마지막 목표”라고 밝혔다. 정 원장은 “우리나라 국민들은 근면하고 성실하고 끈질기다”며 “고된 훈련과정속에서의 어려움도 인내심을 갖고 참고 견딜 수 있는 우리는 간호고등학교를 통해 간호계에서만큼은 비교적 진입장벽이 적은 전 세계로 진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9살때부터 신문 읽기=하루에 신문을 7~8개씩 보고 있는 정 원장은 어린시절 9살때부터 신문을 보기 시작해 55살이 된 지금까지 46년동안 신문독자로 지내다보니 어려서부터의 꿈, 도전의식, 침착함, 따뜻함 등의 성정이 신문을 통해 습득된 것 같다고 말했다.
문과와 이과를 두루 접한 공부를 하고 신문을 많이 읽다보니 통섭의 학문에 강해져서 외부 특강 요청도 많이 받는 정 원장은 '수술은 세우리가 제일 잘하더라'라는 캐치 프레이즈를 내걸고 환자들에게 고통의 시간을 지나고 나면 극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고 있다고 소개했다.
환자들에게 친절하고 자상하고 따뜻한 정 원장은 “세우리병원은 정호라는 제 이름을 내걸고 자신있게 환자들을 모시고 있다”며 “실력 있는 의사, 아픈 환자를 잘 낫게 하는 최고의 의사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한성일 기자 hansung007@
● 정호 원장은…
1960년 서산 출생, 서령중, 충북고, 경희대 의과대학 졸업. 의학박사. 신경외과 전문의. 을지의대병원 신경외과 과장. 프랑스 리온대학 연수, 세계최대 울프 척추내시경 수술 자문의. 세계 최초 침습적 척추수술학회 회원, 대한척추인공관절학회 정회원, 국민연금관리공단 척추자문의, CMB 대전방송 메디컬 포커스 진행, 충남대병원 외래교수, 을지대병원 외래교수, 대전시생활체육회 부회장으로서 생활체육 육성 공로로 2013년 제25회 대전시문화상 체육부문 수상. 대전지방검찰청 운영위원. 대전시럭비협회장, 연정국악문화회관 후원회 부회장 등으로 활동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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