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사연이다. A씨는 부인과의 사이에 결혼해 첫 아이를 낳았다. 하지만, 지적장애 판단을 받았다. 지적장애 자녀를 키우면서 겪은 고통 때문에 부인이 둘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는 걱정이 앞섰다.
천안 모 병원에서 임신 중 할 수 있는 모든 검사를 했다. 병원 측도 산모가 노산인데다, 첫 자녀가 지적장애 1급 판정을 받은 상태라는 말을 듣고 일반적인 검사 외에 추가로 유전자 검사 등 가능한 한 모든 조치를 취한 결과, 정상소견으로 나타났다.
그러다가 2005년 7월 둘째 남자아이를 낳았고, 물론 분만 시에는 뇌 손상 또는 지적장애를 의심할 이상 소견이 발견되지 않았다. 출산 후 3개월여가 지난 후에도 검사 결과, 모두 정상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돌이 지난 후 나타났다. 생후 1년 2개월 후인 2006년 9월 검사를 했더니 둘째 아이가 발달지연 장애를 앓고 있었고, 결국 지적장애 1급 판정을 받은 것이다.
이에 A씨는 “만일 둘째가 장애아인 것을 알았더라면 낳지 않았을 것”이라며 병원이 진료와 검사를 소홀히 한 것”이라고 병원 등을 상대로 '20년간 매월 100만원씩 모두 2억4000만원의 치료비와 생활비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는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1심 법원은 모자보건법을 근거로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모자보건법은 임산부 본인 또는 배우자에게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낙태를 인정하고 있을 뿐, 태아의 질환은 인공 임신중절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A씨가 아이의 지적장애를 알았더라고 낙태할 결정권이 없다”고 기각했다.
또 “지적장애의 원인이 유전적 원인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생물학적 요인과, 환경ㆍ사회문화적 원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지적장애 원인이 병원 측의 산전관리 당시 존재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A씨 측은 “지적장애를 가지고 출생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를 발견할 수 있는 검사와 검사결과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설명했어야 한다”며 설명의무 위반이라고 항소했다.
하지만, 대전고법 제1민사부(재판장 정선재)도 원심 법원의 판단을 인정해 A씨의 항소를 기각했다고 20일 밝혔다.
재판부는 “일반적 검사 외에도 추가 검사를 했고, 병원이 소개한 곳에서 정밀검사도 받는 등 수차례 정기적으로 검사하고 충분히 설명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편, 현행 모자보건법은 ▲임신부 본인이나 배우자가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본인이나 배우자가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해 임신된 경우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 간에 임신된 경우 ▲임신의 지속이 보건의학적 이유로 임신부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고 있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에 한해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윤희진 기자 heeji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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