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는 상처의 꽃… 세상에 드리는 초라한 선물

詩는 상처의 꽃… 세상에 드리는 초라한 선물

10월 풀꽃문학관 개관 맞춰 공주시, 나태주문학상 제정 열일곱살 첫 시 '연가초' 발표 중도일보 문화면 실려 '인연'

  • 승인 2014-07-17 17:53
  • 신문게재 2014-07-18 9면
  • 한성일 기자한성일 기자
[피플] 공주의 간판 스타 '풀꽃시인' 나태주 공주문화원장을 만나다

▲ 나태주 공주문화원장
▲ 나태주 공주문화원장

전국민이 애송하는 시 '풀꽃'의 작가 나태주 시인을 만났다. “시는 상처의 꽃입니다. 상처가 승화되어 꽃으로 표현되죠. 저의 시는 세상에 드리는 초라한 선물입니다. 좋은 시란 어린이에게는 노래가 되고, 청년에게는 철학이 되고, 노인에게는 인생이 되는 시입니다. 시인은 마이너인간입니다. 메이저가 되면 절대로 좋은 시를 쓸 수 없죠.”

7월이 시작되던 첫째주 금요일 오전 공주시 반죽동에 위치한 공주문화원을 찾았을때 영원한 풀꽃시인 나태주 공주문화원장(70)이 들려준 말이다. 나태주문학상 운영위원회(위원장 이준관)는 공주시의 적극적인 후원에 힘입어 오는 10월 나태주 풀꽃문학관 개관을 앞두고 제1회 나태주문학상을 제정, 시상하기로 했다. 이에 공주문화원에서 나태주 시인을 만나 나태주문학상에 대한 이야기와 더불어 시와 함께 한 70평생 이야기를 들었다. 오는 10월 개관을 앞두고 있는 '나태주풀꽃문학관'은 공주문화원에서 걸어서 오분 거리에 있었다. 공주시가 제공한 땅과 건물을 문학관 용도에 맞게 리모델링하기 위해 공사에 한창인 문학관을 둘러보면서 나태주 시인과 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편집자 주>

▲공주문화원 나태주 원장의 사무실 풍경

7월4일 금요일 오전 자동차로 한시간을 달려 도착한 공주문화원. 직원들의 안내로 2층 원장실에 들어서니 나태주 원장이 해맑은 미소로 반갑게 맞아주신다. 사방 벽은 책과 그림으로 뒤덮여 있고, 책상과 탁자에는 음악 CD와 책들이 수북하다. 다기세트에 녹차를 끓여 내주시는데 향이 일품이다. 사무실의 액자그림중 탤런트 송혜교를 닮은 기생 계향의 화사한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전국민이 애송하는 나 시인의 대표작 '풀꽃'은 스케치에도 일가견이 있는 나 원장이 직접 그린 보랏빛 풀꽃과 함께 액자에 담겨 필자를 맞아준다.

'창작은 외로움의 소산이자 상처의 꽃'이라고 정의한 나태주 원장은 '상처의 꽃이 칼이고, 칼 뒤에는 외로움이 있고, 외로움 뒤에는 그리움이 있다'고 했다. 그리움과 외로움이 칼이 되고, 상처가 되고, 꽃이 된다는 것이다.

▲시는 상처의 꽃

나태주 시인은 시에 대해 “시는 인생살이를 하다가 받는 온갖 상처의 꽃”이라며 “그 꽃 뒤에는 칼이 있고 그 뒤에는 외로움이 있고 그 뒤에는 그리움이 있고, 다시 그 뒤에는 실패가 있고, 그 뒤에는 사랑이 있고, 사랑 뒤에는 열정이 있고, 다시금 그 뒤에는 어리석은 우리네 인간의 욕망 내지는 소망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는 위로와 축복과 치유가 필요한 안쓰러운 인간들”이라며 “독자와 소통하는 시, 감동이 있는 시를 쓰기 원하는 사람들은 외로움 없이, 그리움 없이, 실패 없이, 사랑 없이 시를 쓰려고 하면 안된다”고 말했다.

시는 진정 상처의 꽃이다.

피카소와 고흐의 사랑의 산물이 그림이 되었듯이 나태주 시인의 사랑의 산물들은 모두 시로 태어났다. 사랑이 상실되면 꽃이 안피고, 불완전한 사랑이 그리움이 되고, 외로움이 되고, 칼이 되고, 상처가 된다. 지난해 나온 산문집 '사랑은 언제나 서툴다'에서 밝혔듯이 나 시인의 시의 배경은 사랑의 망설임과 일렁거림, 카오스와 파토스, 뭉쳐서 가라앉아 있는 이중색, 삼중색이다.

▲제1회 나태주문학상 제정

제1회 나태주문학상 모집 요강에 따르면 응모자격은 등단 20년 내외의 기성 시인이다. 응모 작품은 2013년과 2014년도에 낸 창작시집 1권으로 우편번호 314-100 공주시 대통1길 66(반죽동 184-2) 공주문화원에 보내면 된다. 응모마감은 오는 9월30일까지고, 상금은 1000만원이다. 오는 10월중 발표와 시상을 하게 되는데 우편물은 등기로 보내줘야 되고, 겉봉에 '제1회 나태주문학상 응모작품'이라고 쓰면 된다. 문의는 041-852-9005 공주문화원으로 하면 된다.

올해로 고희를 맞은 나태주 시인은 상복이 터졌다.

지난 5월 정지용 문학상을 수상한데 이어 보운문화상도 받았다. 거기에 공주시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본인의 이름을 딴 나태주 문학상 제정과 함께 오는 10월 나태주풀꽃문학관 개관까지 앞두고 있어 인생 최고의 영예를 얻은 눈부신 해로 기억될 듯 하다. 나태주 시인은 “공주시에 대한 고마움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천에서 태어난 뒤 그의 소원대로 공주에서 평생을 살아오며 올해 고희를 맞은 나 시인은 충남문화원연합회장과 공주문화원장을 하면서 한달에 12번 이상 특강을 다니는데다 다작의 시집, 수필집, 고희기념 문집을 내는 등 왕성한 활동력을 선보여 충남문인협회 회장이 그의 공덕을 기려 고향 서천에 시비를 세워주기로 했다.

“헤르만 헷세가 이런 말을 했죠. '내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보다 더 행복한 것은 없다'고요.” “만족을 알고 멈출줄 알아야 사랑이 가능하다”고 말한 나 시인은 “탐욕의 반대는 무욕이 아니라 만족”이라고 강조했다.

▲시인의 자세-독자에 대한 애정으로 먼저 다가서기

나 시인은 “세상이 어지럽고 힘든 것은 표현하지 않아서이고, 사랑은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며 “70이 되니까 인생을 정리하게 된다”고 말했다.

나 시인은 “작가는 자기 작품을 포장하고 관리해줘야 된다”며 “독자층이 형성돼 1000권 정도는 세상에 스며들고 빨려들어가야 된다”고 말했다. 그는 “시인은 자기 독자층의 형성을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며 “독자에게 먼저 책을 주고 손을 내밀어야 되고, 독자를 매우 소중히 생각해야 된다”고 강조했다. 특히 “아무리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도 자기 책을 보내주는 성의를 보여줘야 된다”고 조언했다.

강연은 한시간 해도 청중들에게 사인해주는데는 2시간이 넘게 걸릴 정도로 나태주 시인은 독자 한명 한명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갖고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있다.

나 시인은 사인을 받는 청중들에게 글도 써주고, 그림도 그려준다. 특히 끝까지 참고 기다린 6명 정도의 친구들에게는 시의 전문을 써주고 정성껏 그림을 그려준 뒤 같이 사진을 찍어준다. 그렇게 남은 친구들은 세상에 남는 꽃이 된다.

“나의 슬픔, 고난, 시련, 소망, 이런 것들이 좋은 시가 되어 앞길을 밝혀줬으면 좋겠습니다.”

▲전국민의 애송시 '풀꽃'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오래 보아야/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

1992년도 작품 '풀꽃'의 전문이다. '쬐끔은 보랏빛으로 물들고 싶을때'라는 시집에 들어간 시가 바로 '풀꽃'이다. 이해인 수녀가 자신의 홈페이지와 책에 올려줘서 알려진 시이기도 하다.

이 짧은 한편의 시가 초중등 교과서에 실리면서 나태주 시인은 전국에서 강의 요청이 쇄도하고 있고, 지금도 한달에 12건 이상의 특강을 다니는 인기 강사가 됐다. 교보문고와 쿠크다스 광고, 라디오 시그널 뮤직, LG핸드폰, 대구은행, 성동구청을 비롯해 부산, 온양, 청양, 충북대 등 수많은 단체와 기관들에서도 그의 시를 즐겨 인용하고 있다.

나태주 시인은 풀꽃이 전국민에게 어필한 이유에 대해 “우리들은 남들보다 높게, 남들보다 빠르게 가기를 바라는 마음밭에서 자랐기때문에 전부 불행하다고 느끼고 화가 나있어 마음의 위로가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전국민이 다 화가 나있어 '헝그리 시대'를 지나 '앵그리 시대'가 됐습니다.어떻게 해야 할까요. 위안과 치유, 축복과 감사, 만족과 힐링이 필요한거죠. 남을 끌어내리지 말아야합니다. 자기가 가진 것에 대해 만족이 필요합니다. 작은 것을 사랑하고 아끼고 감사할 줄 알아야 됩니다. 비교와 유행을 떠나 가진 것에 만족하고 감사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더 넓게, 더 빠르게'에서 '조금 느리게, 조금 자세하게' 가자는거죠.”

▲나태주 시인이 최초로 시를 발표한 곳이 바로 중도일보

나태주 시인이 공주사범 학생 시절인 1962년 열일곱살때 최초로 발표한 시가 바로 중도일보에 실린 '연가초'다.



거지나 될거나/옷일랑 천결만결 기워 입고 거지나 될거나/송진 냄새/고개 우흐로/소곳이 스미는/먼 남도 길을/걸어나 갈거나/사뭇/놋날같이 피었다가/떨어지는/바람에 쌓이는/꽃을 밟고/노을에 비친/꽃잎을 밟고/끝없이 갈거나/거지나 될거나/말 못하는 거지나 될거나/가는 곳마다 푸대접에/마을 어귀에 앉아우는/거지나 될거나.



나태주 시인은 “이때 당시 중도일보는 대전 최고 역사의 신문으로 문화지면에서 특히 앞서가는 신문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중도일보에 시를 기고하면서 학생시절부터 중도일보와 인연을 맺은 셈이다.

나 시인은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지역 최고의 신문이 중도일보”라며 “제 시가 실렸던 날부터 중도일보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나태주 시인의 시론-시는 상처에서 피어나는 꽃

나 시인은 “시를 쓰는 것을 창작한다고 하는데 이때 창작의 '창'(創)자를 살피면 그것은 상처를 나타내는 '창'(倉)이란 글자와 '칼'(刀)을 말하는 선칼도방으로 구성돼 있다”며 “이런 것으로 보아 시를 쓴다는 것은 칼로 상처를 내는 행위요, 시는 또 그 상처에서 피어나는 꽃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나 시인은 “이를 좀 더 우리들 인생이나 시작과정에 빗대어 보면 다음과 같은 순서나 등식이 있음을 알게 된다”며 “칼 뒤에 외로움이 있고 그 뒤에 그리움이 있고, 그 뒤에 실패가 있고 그 뒤에 사랑이 있고 또 무엇 무엇들이 있다”고 말했다.

시(꽃)←상처←칼←외로움←그리움←실패←사랑←열정←소망(욕망). 나 시인은 “이제는 남이 아닌 나에게 칭찬을 듣기 위해 시를 쓰고 싶다”며 16일 아침에도 휴대폰 문자로 즉석 시 한편을 보내왔다.



뻐꾸기 운다/비둘기도 운다/우리처럼 금학동을/좋아하는 사람들 없을거야/베란다에서 아내와 이야기 나눈다/죽어서도 가끔은 금학동이/생각나겠지/그래서 가끔은 다녀가고 싶겠지/다시 뻐꾸기 운다/멀리서 꾀꼬리도 운다. <가끔은- 나태주>



▲앵그리 시대-승화로 가난한 마음 회복해야

나 시인은 “우리는 자신의 상처에 대해서 감사해야 하고, 실패에 대해서도 곱게 감수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며 “이것이 바로 승화”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에게는 치료가 필요하고, 위로가 필요하고, 휴식이 필요하고, 돌아봄이 필요하다"”며 “자기 자신을 용서하고 자신에게 만족하기 위해서는 가난한 마음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 시인은 “가난한 마음이란 빈한한 마음이 절대로 아니고 작은 것, 낡은 것, 오래된 것, 약한 것, 옛날 것, 값비싸지 않은 것, 흔한 것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또 “주변에 있는 많은 이웃들을 사랑하는 마음이고, 일상의 발견이요, 일상의 사랑”이라며 “다른 사람의 마음과 입장과 처지를 헤아려주고 이해해주고 같이 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나 시인은 “이것이 바로 공자님이 말씀하신 '인'이요, 석가님이 말씀하신 '자비심'이요, 예수께서 설파하신 '긍휼히 여김'"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저는 공주장기초 교장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던 2007년 급성췌장염에 걸려 5개월동안 물도 못삼킬 정도로 사경을 헤맨 경험이 있다”며 “지금 현재 나의 몸은 쓸개도 떼내고, 간도 잘리고, 췌장도, 신장도 4분의 3은 떼어냈고, 전립선 장애도 있고, 머리 속에는 작은 혹이 2개나 있다”고 밝혔다. 나 시인은 “그래도 제가 견뎌내는 것은 사랑하는 마음이 있고, 그리워하는 마음이 있고, 소망이 있기때문”이라며 “저에겐 하루하루가 아깝고 귀하다”고 말했다.

그는 “죽음의 경계에 서본 사람만이 제 심정을 안다”며 “제가 특강을 마치고 나올때 강의를 들은 고등학생들이 내 책에 사인을 해달라고 다가올때면 가슴이 콩당콩당 뛴다”고 고백했다.

한성일 기자 hansung007@

●나태주 시인은 누구인가…

1945년 충남 서천에서 출생해 공주사범학교를 졸업했다.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시인이 됐다. 1964년 초등학교 교사가 되어 43년간 근무하다가 2007년 공주 장기초 교장을 끝으로 정년퇴임, 현재는 공주문화원 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동안 충남문인협회장, 충남시인협회장, 공주문인협회장, 한국시인협회 심의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낸 책으로는 시집 <대숲 아래서>에서부터 <세상을 껴안다>까지 33권의 시집이 있고, 산문집으로 <풀꽃과 놀다>,<사랑은 언제나 서툴다> 등 10여권이 있다. 두 차례에 걸쳐 <한국시 100인선집>에 선정되기도 했다. 받은 상으로는 흙의 문학상, 충남문화상, 현대불교문학상, 박용래 문학상, 시와 시학상, 편운문학상, 한국시인협회상, 정지용문학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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