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쌓여온 폐단으로 곳곳에서 참사는 계속되고 있지만, 여전히 책임 소재가 불명확한 게 현실이다.
참사 초기에는 대부분 책임을 반드시 묻겠다고 유족들 앞에서 다짐하지만, 돌아서면 '남의 일'로 치부하기 일쑤다. 정작 어디에 책임을 물어야 하는지 답을 찾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실정이다. 책임 소재가 불분명한 건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특정대상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는 게 가장 큰 문제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중 삼중으로 이뤄지는 위탁(하청)계약 관행이다.
초ㆍ중ㆍ고교의 수학여행과 체험학습 등의 프로그램은 대부분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 위탁 후 재위탁 등을 거치면서 사고가 발생하면 학교의 입찰에 참여해 사업을 수주한 계약 당사자가 아니라 '계약 사슬'의 가장 아래 있는 '하청 업체'에 책임이 전가되는 꼴이다.
태안 해병대캠프 참사의 경우 당초 공주사대부고는 태안의 유스호스텔(H사)과 계약을 맺었다. 유스호스텔로 허가 난 업체가 청소년 수련활동까지 할 수 있도록 허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유스호스텔은 학교와 계약 후 자신들이 직접 하지 않고 두 개의 업체와 재위탁 계약을 체결하려 했다. 한 업체는 학생 1인당 2만3000원을, 다른 업체는 1인당 1만8000원을 제시했다. 유스호스텔은 더 저렴한 업체와 계약했는데, 이 업체가 바로 서울에 있는 K여행사였다.
문제는 K여행사도 해병대캠프를 직접 운영하는 곳이 아니라는 것이다. 유스호스텔과 계약한 K여행사는 학생 1인당 3000원의 이익을 남기고 자신의 동서가 운영하는 해병대캠프 업체와 1인당 1만5000원에 다시 계약했다. 캠프를 직접 운영한다는 업체지만, 사고 당시 학생들을 바다 속 갯골로 이끈 교관 등 대부분이 관련 자격증조차 없는 무자격자들이었다.
결국, 학생 1인당 몇 천원을 남기려고 사업만 수주한 채 위탁하고 또 위탁하는 이른바, 위탁의 폐단이 참사를 불러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유스호스텔 대표는 수상레저안전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은 후 보석으로 풀려나 항소 중이고, 나머지 해병대캠프 운영 업체와 교관 등에겐 과실치사 혐의가 적용돼 금고 1~2년을 받고 항소심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이후식 유족 대표는 “애초부터 태안군과 태안해경 등의 묵인하에 유스호스텔 측의 불ㆍ편법 운영이 가능했고, 학교 측은 이중, 삼중 계약을 직접 확인하지 않았으며, 수차례 제기한 민원을 방치한 여성가족부도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해병대캠프 참사를 겪으며 위탁과 재위탁의 폐단이 드러났음에도 일선 학교에서는 이런 행태의 계약이 여전히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대전지법 제2행정부(재판장 구창모)는 H 여행사가 대전교육감을 상대로 제기한 부정당업자 입찰참가자격 제한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충남기계공고와 충남여고의 수학여행을 수주하려고 H 여행사는 2006년식 이상의 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학교 측의 조건을 맞추기 위해 (주)K고속관광과 계약을 맺은 후 입찰에 참여해 수주했다. 하지만, 버스업체가 차량등록증을 위조해 차량연식을 속인 것으로 드러나자 계약 당사자인 H 여행사가 입찰참가자격을 박탈당한 사건이다.
하지만, 얼마 후 대전 우송중에서 버스 연식을 속인 수학여행 차량 때문에 41명의 학생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업체가 버스 4대 중 2대의 차량등록증을 변조한 가짜 입찰서류를 제출해 사업을 수주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한 위탁과 재위탁의 폐단으로 발생한 사고에 대해 책임을 묻는 데는 여전히 한계가 있어 학생들의 안전확보와 사고에 대한 책임은 위탁될 수 없도록 법률적 책임을 강화할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대전과 충남교육청 관계자는 “버스와 숙박 등을 나눠 입찰할 수도 있지만, 계약 횟수도 늘어나는 등의 문제 때문에 하나로 묶어 대행업체를 선정한다”며 “수련활동에 재위탁은 처벌되는 사안이고 교통안전공단 등을 통해 버스회사 정보와 운전기사까지 파악할 수 있어 예전과는 다르다”고 말했다.
윤희진ㆍ임병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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