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특성 무시한 판결로 성폭력 면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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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특성 무시한 판결로 성폭력 면죄부”

여성단체 대전법원앞 규탄 “사건시간·장소 특정요구는 무리” 법원 “피고인 방어권위해 불가피… 대화통해 문제 해결할 것”

  • 승인 2014-06-25 18:06
  • 신문게재 2014-06-26 5면
  • 윤희진 기자윤희진 기자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와 전국장애인성폭력상담소 등 전국의 187개 기관 대표들이 25일 대전지방법원 앞에서 지적장애인 성폭력 가해자에게 연이어 무죄 판결을 내린 지방·고등법원 규탄 기자회견을 벌이고 있다. 
<br />이성희 기자 token77@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와 전국장애인성폭력상담소 등 전국의 187개 기관 대표들이 25일 대전지방법원 앞에서 지적장애인 성폭력 가해자에게 연이어 무죄 판결을 내린 지방·고등법원 규탄 기자회견을 벌이고 있다.
이성희 기자 token77@

지적장애여성에 대한 성폭력 가해자들에게 무죄가 선고되자, 전국 여성ㆍ장애인단체가 반발하고 나섰다.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와 전국장애인성폭력·가정폭력상담소 등 187개 단체는 25일 대전고등·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적장애인 성폭력 가해자 연이은 무죄 판결로 피해자와 그 가족의 삶과 인권을 무참히 짓밟고 있다”며 대전고법과 지법을 규탄했다.

모두 세 가지 사건 때문이다. 우선, 대전 모 교회 장애인부서 담당 전도사가 지적장애여성을 모텔로 유인해 강간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4년을 받은 사건으로, 대전고법 제1형사부(재판장 이원범)는 원심을 파기하고 추행 혐의만 적용해 징역 2년을 선고했다.

지난 4월에는 대전지법 제1형사부(재판장 김용덕)가 장애인주간보호센터 시설장의 남편인 운전기사가 차량에서 센터에 다니는 지적장애여성을 강제추행한 혐의로 징역 1년 6월을 받은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두 사건 모두 '추행 사실은 유죄로 인정할 수 있으나, 범행 일시와 장소는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된다'는 게 무죄 판단의 근거다.

현재 대전지법 제11형사부(재판장 송경호)에 계류 중인 친아버지가 지적장애 딸을 추행한 사건도 유사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게 단체들의 설명이다. 이 사건의 선고는 다음달 3일이다.

단체들은 재판부가 지적장애 특성을 무시한 채 무리한 입증을 요구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지적장애인 피해자에게 구체적이고 정확한 피해내용과 일시, 장소 특정을 요구한다”며 “특히 지적장애 특성상 자신을 방어하지 못하고 스스로 진술을 일관되게 유지할 수 없음에도 진술 일관성과 신빙성을 강요해 결국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주고 있다”고 밝혔다.

또 “타지역 법원은 이런 점을 적극 고려해 진술 내용을 전체적으로 판단하고, 시간과 장소 등을 특정하지 못해도 가해자의 범행의도와 피해자의 장애를 이용해 성폭력을 했는지에 초점을 맞춰 판결한다”며 “그럼에도, 대전법원은 비장애인과 같은 기준으로 범죄구성요건에 맞는 진술을 끝까지 요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대전고법은 형사소송절차의 기본원칙에 따른 판결이라고 해명했다. 고법은 “공소장에 기재된 일시에 피해자가 그 장소에 있었음이 증명되지 않거나 다른 장소에 있었을 개연성이 있는 경우, 피해자가 진술한 여러 피해 일시 중 공소사실에 있는 특정 일시에 범행이 있었음이 불분명한 경우 등에서는 검사의 공소장변경이 없는 한 유죄판단을 할 수 없게 돼 있다”고 밝혔다.

또 “대전법원도 지적장애 피해자 진술의 한계가 있음을 반영해 재판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법리나 실무상으로 특별히 다른 지역 법원과 차이를 두고 있지는 않다고 생각된다”며 “재판부가 공소사실의 특정을 요구하는 것은 재판 대상을 명확히 해 실체적 진실발견에 접근하려는 노력임과 동시에 피고인의 방어권행사를 균형 있게 보장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단체와 대화를 통해 문제해결에 나서겠다고 강조했다. 고법 관계자는 “그동안의 재판 실무를 다시 한 번 돌아보고 빠른 시일 안에 관련 단체와 재판 실무에 참여하는 법률가(피해자 국선변호사, 국선전담변호인) 등과 간담회 등을 통해 법원과 단체 사이에 유익한 의견 교환이 이뤄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윤희진 기자 heeji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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