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난순 교열부장 |
인간이 손과 발로 이룰수 있는 가장 위대한 즐거움을 주는 축구. 그리고 축구는 전쟁의 또다른 이름이다. 그 전쟁에 참여하는 전사는, 그 냉혹하고 잔혹한 세계에서 삶의 본질을 터득하는 지혜를 배울 것이다. 2014브라질 월드컵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전쟁을 방불케 하는 월드컵 축구는 '진정한 남자'의 전형을 보여주는 장이다. 세상은 진짜 남자, 파워·근육·건장한 남자를 원하고 있다.
인류학자들은 사냥꾼들이 사냥을 할때 협동하는 세계를 '수컷의 연대'라고 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남자는 더 이상 쓸모없게 된 사냥꾼들이다. 그래서 남자에겐 축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남아도는 에너지를 축구라는 운동에 쏟아부어야만 한다. 총 대신 축구공이 필요한 이유다.
케인스는 경제학적인 측면에서 인간의 욕망을 설명했다. 그는 사업가가 자신의 리비도를 자본에 쏟아붓는 충동은 비극을 피하고 인간본성의 몇몇 위험한 경향을 한 곳으로 집중시키는 장점마저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야심가들이 여자들을 강간하고 경쟁자들의 목을 능수능란하게 따는 것보다는 엄청난 부를 쌓아올리는 게 더 낫지 않겠냐는 것이다.
축구 뿐만 아니라 모든 스포츠는 문화정치학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소재이기도 하다. 생각할수록 비위가 상하는 것은 스포츠를 도구로 바라보는 정치지도자들의 행태다. 스포츠는 정치 외부에 치외법권으로 존재한다는 환상을 대중들이 갖고 있는 사이, 권력자들은 교묘히 스포츠라는 도구로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보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88올림픽은 부정한 방법으로 국가권력을 장악했던 전두환. 노태우의 유화적 통치수단이었다. 광주라는 대표제물을 통해 자신들의 권력의 정당성을 허위로 획득한 만큼 국민들의 관심을 정치 밖으로 돌릴 필요가 있었다.
이렇듯 스포츠가 종종 순수성이 훼손돼 마음이 불편하기도 하지만 월드컵 축구는 아주 매력있는 축제임에는 분명하다. 골이 터질 때마다 선수들과 초조와 불안으로 지켜보던 관중은 최고조의 쾌감으로 지구가 폭발할 것 같은 에너지를 분출한다. 승자와 패자의 희비가 교차하고 노력한 만큼 얻어지는 그라운드의 세계. 축구만큼 비정하고 정직한 세계가 어딨을까.
작은 학교의 힘의 저자 박찬영 논산 내동초 교사는 아이들에게 운동장과 축구는 매우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학교폭력이나 왕따 같은 문제는 좁은 운동장과 무관하지 않단다. 뛰어놀며 스트레스를 발산할 공간이 없으니 좁은 닭장 안의 닭처럼 다른 친구들을 괴롭히거나 공격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운동장을 돌려주려면 우선 입시위주 교육을 바꿔야 한다. 특목고·자사고 등 불평등한 사회의 불평등한 학교교육은 계층간의 분리를 더욱 심화시킨다. 지금의 학교는 아이들에게 책상 앞에서 열심히 공부만 하면 더 높은 계층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준다. 참된 학교교육은 실종됐다. 자기파괴적인 과잉경쟁이 아이들을 자살하게 만들고 있다. 진짜 세상을 배우는 곳은 교실이 아니고 국·영·수가 아니다. 아이들은 운동장에서, 자연속에서 스스로 움직여 배운다. 운동을 통해서 팀워크, 리더십, 전술, 정신력 등을 터득하게 된다.
며칠 전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를 지나다 농구공을 갖고 노는 남자 어린이를 보게 됐다. 아침 햇살에 빛나는 머리칼을 나폴거리며 혼자 농구에 열중하고 있었다. 공을 탕탕 바닥에 두드리며 이리저리 다리 사이로 옮기면서 농구의 기술을 익히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농구 골대에 공을 집어넣기 시작했다. 계속 실패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그 애의 눈빛에서 오기와 진지함이 읽혀졌다. 그렇게 계속 연습하다 보면 언젠가 공을 넣는 데 성공할 것이다. 나는 그 아이가 훗날 입시 공부에 찌들지 않길 바란다. 그건 정부와 교사·학부모·학생의 자발성이 있어야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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