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전증 증상은 1년에 36분만… 사회적 편견이 더 힘든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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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전증 증상은 1년에 36분만… 사회적 편견이 더 힘든 병"

반복적인 발작에 만성화되는 뇌전증… 환자절반은 약물로 호전되거나 완치 간질 중첩증 임상실험 진두지휘… 교과서 속 4가지치료법 변경이 목표

  • 승인 2014-06-02 14:05
  • 신문게재 2014-06-03 9면
  • 김민영 기자김민영 기자
●지금은 전문질환센터시대 충남대병원을 가다-10.대전ㆍ충남 권역심뇌혈관질환센터 명의 김재문 교수

“간질이라는 병은 환자에게 애정이 없으면 치료가 어려워요. 환자를 자식처럼, 인간적인 동료로 생각하면 마음이 아플때가 많죠.”

의사라기 보다는 인생 선배로서 푸근한 그의 인상이 여운이 남는다. 충남대학교 신경과 김재문<사진> 교수는 뇌질환 가운데 뇌전증(일명 간질) 전공이다. 과거부터 우리들의 인식속에 좋지 않은 편견을 남기고 있는 질병이기도 하다.

뇌전증이란 단일한 뇌전증 발작을 유발할 수 있는 원인 인자, 즉 전해질 불균형, 산-염기 이상, 요독증, 알코올 금단현상, 심한 수면박탈상태 등 발작을 초래할 수 있는 신체적 이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뇌전증 발작이 반복적으로(24시간 이상의 간격을 두고 2회 이상) 발생해 만성화된 상태를 의미한다.

“옛날에 한 군인 장성이 있었어요. 아들이 간질이라고 판명을 받자 대청호에 데리고가서 총으로 죽이는 사건이 있었죠. 그정도로 무서운 편견을 가진 질병이 뇌전증입니다.”

의약의 목적과 가장 중요한 것은 삶의질이다. 하지만 뇌전증 환자들의 삶의 질은 암환자보다 밑에 있다. 간질보다 더 삶의 질이 나쁜 것이 우울증 밖에 없다고 알려질 정도다. 직업도 구하지 못하고, 병도 숨기고 살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김 교수의 진료중 중요한 일 중 하나가 결혼을 한다는 환자의 배우자들에게 병을 설명하고, 설득하는 작업이다.

그는 “환자가 시집을 간다고 하면 신랑과 함께 불러서 병을 설명해 준다. 남자가 납득을 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면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며 “숨기고 결혼할 경우 한달도 안돼서 이혼을 위한 진단서를 받으러 오기도 한다. 병을 잘 알지 못하고 편견만 갖고 있어서 안타까울 때가 많다”고 말한다.

▲어머니 두통 고쳐주고 싶었던 효자=김재문 교수의 어릴적 꿈은 변호사였다. 하지만 이북이 고향이신 아버지의 신념은 '기술이 있어야 한다'였다. 면허를 갖고 있는 직업을 원했고, 그는 아버지의 권유대로 의과대학을 선택하게 된다.

의과대학에서 신경과를 선택하게 된 것은 이유가 있다. 김 교수의 어머니는 그가 어릴적부터 심한 편두통을 앓고 있었다. 학교에 다녀오면 안방에 어둡게 커튼을 치고, 머리에 띠를 두르고 쓰레기통을 안고 구토를 하고 계신 어머니의 모습이 생생했다.

“어릴때 아픈 추억이에요. 어머니가 편두통이 도지면 걸어다니는 소리도 예민하게 반응하셨죠. 어머니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고 싶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정정하신 어미니의 두통을 김 교수는 신경과 교수가 돼서 말끔하게 고쳐드렸다.

그는 “의과대 3학년때 신경과 관련 뇌파에 대한 강의를 들은적이 있었다. 2시간 동안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다”며 “저걸 해야겠다는 생각에 은사님을 찾아갔다. 그 뒤로 신경과를 전공하게 됐는데 참 잘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한다.

▲충청도 관할 서울 토박이=김교수의 고향은 서울이다. 서울에서 나고 서울에서 자라 서울대학교를 졸업했다. 대전과의 연고는 없는 그였지만, 1991년 펠로 수련 이후에 은사님은 충청도 지역의 뇌전증 환자를 위해 봉사하라며 충남대학교 병원으로 내려보내셨다. 당시만 하더라도 충남대병원이 신생병원이었고, 특수 질환을 연구하던 의사였던만큼 같은 전공자들끼리 전국의 국립대학을 중심으로 관할을 나눠 내려오게 된다.

“처음에는 3년만 고생하겠다는 생각으로 왔는데 연구실 방에 왔더니 아름다운 보문산 설경을 보면서 평생 책이나 읽다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지금은 당시부터 20년넘게 인연을 맺어온 환자들 때문에 떠나지도 못하고 충남대병원에서 행복하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충남대병원 외래에는 1년에 200~250명 정도의 새로운 뇌전증 환자가 온다. 한 해 평균 뇌전증 환자 1100여명을 진료해왔고, 지금까지 누적숫자만 6만명에 이른다.

그는 “91년에 처음 만난 뇌전증 환자중에 100여명 이상은 지금도 만나고 있다”며 “어린아이었던 환자들이 지금은 아기 엄마가 돼있기도 하다”고 말한다.

또 “어찌 보면 재미있다. 엄마 아빠보다 나를 더 믿고 따르는 경우도 있다”며 “그런 환자가 하나 있으면 연구가 힘들고 진료가 어렵더라도 큰 의미도 있고, 위로가 된다.”고 말했다.

▲뇌전증은 편견으로 인한 환자들 고통이 너무 커=뇌전증은 아직까지 정복이 덜 된 질환이다. 100명의 환자가 있으면 절반인 50명은 약을 먹으면 호전되거나 완치된다. 20% 정도는 약을 끊으면 또다시 간질증상이 나타나 장기적으로 약을 먹게되는 환자다. 30%는 약을 먹어도 계속 간질증상이 나타나고, 이가운데 30%는 수술로 치료하게 된다. 나머지 23~25%는 난치성 간질이라고 해서 발작 증상이 지속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김 교수는 “의학적으로 보면 고혈압, 당뇨는 지속적으로 병을 갖고 있는 질환이다. 하지만 뇌전증은 한번 발작에 3분을 넘기는 경우가 거의 없다. 한달에 1번정도 나타나는 난치성 환자에게 1년이면 36분 아픈것에 불과하다”며 “지속적으로 아픈 환자가 아니라 1년에 36분 아픈 환자들에게 편견을 갖고 본다는 것이 억울하고 속상하다”고 말한다.

“내 환자중에 어떤 환자가 진료도 아닌데 외래를 보러왔어요. 수술 이후 발작이 나타나지 않았던 환자인데 얼굴이 화색이 돌아서 하는 말이 “선생님 제가 회사에 필요하대요” 이러더라구요. 가슴이 뭉클했어요. 대부분의 간질환자들이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직업없이 살아가는 경우가 많은데, 간질이라는 질병을 극복하고 직장까지 잡았다고 생각하니 자식일 같아 눈물이 왈칵 나오더라구요.”

뇌전증환자 상당수가 심각한 편견에 시달린다. 발작을 했다는 이유로 남편에게 매를 맞고 병원으로 오는 경우도 있다. 아버지가 아들의 발작을 하지 않게 하기 위해 발작을 막는 약을 자의적으로 처방해서 폐인을 만들기도 한다.

그는 “병을 치료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데, 사회로부터 세상으로 부터 상처를 입은 환자들의 마음을 치료하려 하는 것이 더욱 어려운 것 같다”고 말한다.

▲따뜻한 시각이 뇌전증 환자를 사회로=간질학회 내부에서 가장 파워가 있는 파트는 사회 위원회다. 의사들이 간질학회를 할때면 환자들의 모임인 환자협회도 모임을 함께한다. 환자들 스스로가 경험담도 이야기하고, 환자들끼리 연주단도 구성해 공연도 한다.

김 교수는 “환자들의 사회 생활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나쁜 인식때문에 사회성 있는 활동이 쉽지 않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세계간질학회를 유치하려 했다 고배를 마신 이유도 국내 간질환자 협의회가 활성화 되지 못했던 것이 주요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세계 간질협회는 학회와 환우 협의회를 함께 진행해야하는데 국내는 활동이 부족했다.

그는 “환자들이 숨어드는 경향이 있다. 외래 환자 1700여명에게 편지를 보내 뇌전증에 대해 평소 궁금한 내용을 물어보고 간담회도 하자고 했더니 참석자가 50명 미만이었다”며 “개인적으로는 의사를 만나러 오는데 모임 자체는 극히 꺼리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편견을 없애기 위해서는 뇌전증 환자들이 직접 자신의 병을 알리고 인식을 바꾸는 활동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뇌전증 환자들의 자살률도 높은 편이다.

김 교수는 “잘 안오던 환자가 안 오면 불안하다. 논문쓰려고 환자 차트를 찾아보면, 응급실로 사망해서 오는 경우도 있다”며 “병은 중요하지 않다. 진료에 대한 것은 의사들이 고칠수 있지만, 마음의 상처는 사회에서 치유해 줘야 한다”고 말한다.

▲교과서 바꾸고 싶은 학자=김 교수는 뇌전증 연구회를 몇개 창설했다. 뇌전증 중부지회도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그는 최근 간질 중첩증에 대한 높은 관심을 갖고 있다. 간질 중첩증은 뇌전증 지속증을 말한다.

그는 “신경학 교과서에 보면 간질 중첩증에 대한 치료법이 4가지가 제시돼 있다. 개인적으로 임상한 결과 방법이 맞지 않다고 본다”며 “이 내용을 바꾸는 작업을 하고 싶다. 사이언스나 네이처지 같은 수준의 세계 학회지에 연구논문이 실려야 변경이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뇌전증 지속증 연구회를 만들어 대규모 임상시험을 계획하고 있다. 현재 프로토콜을 만드는 작업을 진행중이다. 뇌전증 환자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을 앞장서 해결하기 위한 노력도 하고 있다.

김 교수는 “뇌전증 환자들은 보험에서 보험도 들어주지 않는다. 정상인 사람과 큰 차이가 없지만, 보험회사에서 받아주지 않는다”라며 “운전면허도 받기 어렵고 정규직도 30% 미만에 그치고 있다”고 말했다.

병 뿐 아니라 환자의 마음, 사회적 인식까지 치료하는 그는 진정한 의사였다.

김민영 기자 minyeong@

●김재문 교수는…

서울대 의과대학 졸업, 석사 미국 UCLA 연수 충남대학교병원 기획실장, 교육연구실장 충남대학교의과대학 신경과학교실 미국 신시내티대학 방문연구교수 충남대학교 재정총괄 본부장 대한두통학회 회장 대한 임상신경생리학회 부회장 대한뇌전증학회 감사, 상임운영위원, 중부뇌전증지회장 대한통증연구회 이사, 대한뇌전증지속증연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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