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합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이 충만하시길 기원합니다. 사회복지법인 기독교연합봉사회의 제38대 이사장으로 취임하게 되어 감사 예배와 취임식을 갖습니다. 참석해주셔서 자리를 빛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일 오후 2시 기독교연합봉사회관 2층 연봉홀에서 사회복지법인 기독교연합봉사회의 제38대 이사장으로 취임하는 이기복 감독(하늘문교회 담임목사ㆍ사진)이 중도일보 독자들에게 이렇게 초대 인사를 건넸다. 파란 하늘 아래 영산홍이 활짝 피어 붉은 자태를 뽐내던 지난 주 눈이 부시게 푸르른 맑게 개인 날, 월평동 하늘문교회에서 이기복 감독을 만나 지난 날 삶의 이야기와 신앙 이야기, 기독교연합봉사회 이사장으로 취임하는 소감 등에 대해 들어보았다. <편집자 주>
▲이기복 제38대 기독교연합봉사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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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때부터 농사를 지어온 전형적인 농촌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 이용직씨는 대전의 신문사에서 근무하셨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농촌에서 태어나 일하면서 학교 다니는게 힘들기만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농촌에서 자란게 다행스럽고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인격과 감성, 성격 형성에 있어서 도시보다 농촌이 훨씬 사람을 풍요롭게 만들어주고 원만하고 인간답게 키워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감독은 “10년 전 교회가 큰 결단을 내려 월평동 신신농장으로 이전한 후 새성전을 건축하게 된 것도 감사하고, 자연속에 들어와 살면서 꽃과 나무를 가꾸며 지낼 수 있는 것도 감사하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 전기도, 버스도 안들어오던 깡촌 시골에서 살다보니 4㎞나 떨어져 있던 초등학교는 내내 걸어다니고 뛰어다니면서 6년을 개근했다. 무슨 일이든지 시작하면 성실하게 끝까지 열심히 해내는 집안 내력상 아무리 아파도 학교는 갔다. 집안 어른 회갑잔치라도 있는 날이면 조퇴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일단 학교는 갔다. 덕분에 두 다리가 튼튼해져 지금도 매우 건강하다. 나이에 비해 젊어보인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도 이때부터 다져진 부지런함과 건강 덕분이려니 생각한다.
이 감독은 “초, 중, 고등학교를 단 한번도 결석하지 않고 개근한 점은 지금 생각해봐도 자랑스럽다”며 “이렇게 꾸준히 성실하게 한결같은 모습을 보고 하나님이 도구로 쓰시는게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60평생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은 크리스천이 된 일=이 감독이 태어나 자란 동네 4㎞ 반경에는 교회가 없다보니 전도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가 노성중학교를 졸업하던 해 그의 집에서는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말고 농사를 지을 것을 권했다. 부모님의 반대로 고등학교 입학 시기를 놓치게 된 그는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에 간절히 학교에 가고 싶다고 부모를 설득, 그때 당시 후기이던 공주 영명고등학교에 들어가게 된다. 기독교학교인 영명고 입학은 그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변화와 전환기를 맞이하게 되는 일대 사건이었다. '복이 일어난다'는 뜻을 가진 그의 이름 '기복'대로 인복이 많은 그는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 미국 유학 시절 내내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할 수 있었다.
그는 “하나님이 저를 도구로 쓰시려고 제 길을 인도해주시고 축복해주시는 것으로 생각했다”며 “60평생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은 바로 예수를 믿은 일”이라고 말했다.
초등학교때는 성실하기만 했던 그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지도력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 노성중 시절에는 반장을 했고, 영명고시절에는 기독학생회장과 반 회장을 도맡아 하며 리더십을 보여줬다. 그의 첫 신앙생활은 110년 전통의 공주제일감리교회에 나가면서부터 시작됐다. 고등학교에 들어와 첫 믿음생활을 시작하면서 신학대학이 가고 싶었지만 전통적인 유불교집안인 그의 집에서는 그가 교회 다니는 것 자체를 싫어해 핍박을 많이 받았다. 그의 집안 형편을 보면 도저히 대학 갈 상황이 아니었는데 대학이라는 갈림길앞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고등학교때도 3년간 장학금을 받았던 그는 대학에도 4년 장학생으로 다닐 수 있게 됐다.
이 감독은 “대학과 대학원, 미국 유학시절 내내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다”며 “하나님은 그렇게 길을 인도하시고, 축복해주셨고, 기독교를 믿지 않던 집안 식구들이 이제는 모두 기독교인이 돼 저희 집은 저희 동네에서 예수믿고 축복받은 가정으로 불리게 됐다”고 말했다.
▲미국 유학과 목사 안수=목원대 신학과 졸업 후 군종사병으로 광주 통합병원에서 근무한 그는 제대 후 목원대 신학대학원 신학과를 졸업하고 78년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는 삼성감리교회(동부제일감리교회)를 개척해 사목하다가 87년 선화감리교회 부목사로 부름을 받았다.
그당시 선화감리교회 담임목사이던 이준용 감독은 적극적이고, 진취적이고, 신실하고, 믿음직하고,성실한 그를 눈여겨보다가 그를 사위로 삼았다. 감리교계의 거목으로 불리는 이준용 감독은 인재 양성을 강조한 목회자였다.
장인 어른의 권유로 이기복 감독은 그의 나이 만 39세때 미국 유학길에 올라 미국 서부 사학인 아주사 퍼시픽 대학교 신학대학원과 미국 샌프란시스코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 석사와 박사를 받았다. 신학교를 다니던 시절 장학금을 받는 이외에 가정교사 과외 아르바이트를 해서 비교적 여유가 있었던 이 감독에게 도움을 받았던 친구가 미국에서 목회를 하고 있던 덕분에 미국 유학 시절은 그 친구의 도움을 많이 받게 됐다. 그 친구는 이 감독이 장학금을 받고 기숙사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줬고, 아르바이트도 할 수 있도록 주선해줬다.
이 감독은 “오늘의 저를 있게 해준 그 친구의 소중함과 고마움을 늘 잊지 않고 산다”며 친구와의 진한 우정을 전했다.
▲에큐메니칼(교회연합운동)의 선봉에 서다=이 감독은 젊은 시절부터 교회 연합 또는 교회 일치 운동을 의미하는 에큐메니컬(Ecumenical) 운동의 선봉에 서왔다. 그래서 그는 교파를 초월해 기독교연합회장을 비롯해 기독교연합봉사회 이사장직도 흔쾌히 수락하고 열린 사고로 한 뜻을 이루는데 힘써왔다.
그는 기독교계의 일치와 연합뿐만 아니라 수년전 종교지도자협의회 회장을 맡을 당시엔 불교, 천주교, 원불교, 성공회를 비롯한 다양한 종교 지도자들과의 교분 역시 두터웠다. 사회와 국가와 민족을 위해 하나로 뜻을 모으자는 의미에서 그는 종교간 통섭과 화합과 조화에 앞장서온 선봉자다.
하늘문교회에서 다양한 문화행사를 벌이고, 인기 외부 인사 초청 강연을 통해 비신도들에게도 교회 문을 자유스럽게 넘나들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추고 개방한 것도 이 감독의 열린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감독은 15년 전부터 삼성성결교회 신청 목사, 둔산침례교회 박문수 목사, 새로남교회 오정호 목사, 한밭제일교회 이영환 목사, 대전영락교회 김등모 목사, 송촌장로교회 박경배 목사 등과 교파를 초월해 친형제처럼 지내면서 매월 한차례씩 각자의 교회로 초청해 조찬 기도 모임을 갖고, 서로 존경하고, 아끼고, 연합하고, 협력해 선을 이루는 일에도 앞장서고 있다.
▲기독교연합봉사회 이사장으로서 할 일=이 감독은 기독교연합봉사회가 운영하고 있는 대전어린이회관과 행복한우리복지관, 산내종합복지관을 비롯한 여러 시설기관들의 내실을 다지고 건실한 운영을 해나갈 계획이다. 기독교연합봉사회가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많은 역할을 해왔는지 그 활동을 널리 알리고, 어려운 지역을 돕고 어려운 이웃에게 베푸는 일도 더욱 더 힘쓰려 한다. 기존의 구제 범위를 확대해 해외의 어려운 이웃도 돕고 사회 복지 일도 더 적극적으로 힘쓸 생각이다.
이 감독은 “제가 수년 전 대전시기독교연합회장을 맡을 당시에도 기독교계의 위상은 완전히 추락하기 일보 직전의 위기 상황이어서 기독교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힘썼다”고 전했다. 그는 “대사회적인 일을 많이 해서 이미지를 상승시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주일에는 대중교통수단 이용하기를 위한 택시타기운동과 하천 청소운동, 아이들 등하교시 아이 돌보미 운동을 하는 등 적극적인 사회봉사활동을 펼쳐왔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무슨 일이든 적극적으로 열정을 다해 혼신의 힘을 쏟으며 하다보니 대전시성시화운동본부 대표회장도 하게 됐고, 해비타트대전지회 이사장도 역임했고, 기독교아카데미포럼 대표회장과 동서신학포럼 이사장도 맡게 됐다”며 “기독교연합봉사회 이사장으로 있는 동안 최선을 다해 기독교계의 위상을 높이고 사회의 빛과 소금의 역할에 충실하겠다”고 말했다.
▲지역신문 보기 운동 펼치는 사랑의 목회자=중도일보 애독자인 이기복 감독은 지역신문 보기 운동을 펼치는 목회자로도 유명하다. 중앙지는 지역소식을 잘 다루지 않기 때문에 지역이 돌아가는 소식을 알려면 반드시 지역신문을 봐야된다는 철칙을 갖고 있는 이 감독은 “내가 살고 있는 우리 지역이 나와 내 주변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이 지역의 소식을 상세히 다뤄주는 지방지를 반드시 봐야 된다”고 강조했다.
이 감독에게 목회 철학을 물으니 '사랑'이라며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 나라사랑, 자연사랑이야말로 제가 평생 추구해온 신념”이라고 말했다.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여기에 자연사랑과 나라사랑이 더해진다. 자연을 무척이나 아끼고 사랑하는 그는 나무 한그루, 풀한포기도 사람 생명과 똑같이 소중히 여기고 가꾸고 있다.
하늘문교회 앞마당의 나무와 꽃들은 이기복 감독을 만나 더 아름답고 싱싱하게 살아숨쉬며 교회를 찾는 이들에게 기쁨과 희망을 전해주고 있는 듯 하다.
한성일 기자
●이기복 감독은…
목원대 신학대학과 대학원 졸업, 한남대 대학원 사회복지학과 졸업, 미국 아주사 퍼시픽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석사), 미국 샌프란시스코 신학대학원 졸업(목회학 박사), 감리교회 교육국 위원장 역임, 남부연회 부흥단장 역임, 목원대 신학대학 총동문회장 역임, 대전시 기독교연합회장, 대전성시화운동본부 대표회장 역임, 남부연회 감독 연임. 현재 선화기독교미술관 이사장, 대전기독교아카데미포럼 대표회장, 사단법인 동서신학포럼 이사장, 목원대 신학대학원 강사, 목회교육원 이사장, 하늘문교회 담임목사, 기독교연합봉사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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