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대중 정치부 부국장 |
세계 10위의 경제강국, 첨단IT 국가라는 별칭은 '세월호 참사'로 이제 쓰기조차 민망하다. 벌건 대낮에 실시간으로 중계된 세월호의 침몰은 곧 좌초위기에 놓인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의미한다.
우리는 과거의 뼈아픈 기억을 너무 쉽게 잊고 있었다.
21년 전인 1993년 10월, 김영삼 정부 출범 첫해에 발생한 서해 훼리호 침몰은 사망자만 292명으로 사상 최악의 해양사고였다. 그 이후 정부가 내놓은 온갖 해양사고 방지 대책은 세월호 침몰로 무용지물임이 입증됐다. 일주일 전인 16일 오전 세월호 침몰 소식이 전해졌지만 청와대 기자실 분위기는 차분했다. 브리핑에 나선 민경욱 대변인은 박근혜 대통령이 여객선 침몰 사고와 관련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으로부터 즉각적인 보고를 받고 “해군과 해경의 인력과 장비, 그리고 동원이 가능한 인근의 모든 구조선박 등을 최대한 활용해 구조에 최선을 다하라. 여객선 객실과 엔진실까지도 철저히 확인해서 단 한명의 인명 피해도 발생하지 않도록 하라 ”고 지시했다고 전했다. 방송 영상이 구조장면의 중계를 시작했지만 설마 대형 참사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위기는 이어졌다. 이날 낮 한때 승객 전원구조라는 소식에 안도했던 기자실은 오보임이 밝혀지면서 탄식이 쏟아졌다. 17일 오전 뜬눈으로 밤을 지샌 박 대통령은 경호상 문제가 있다는 참모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진도 앞바다 침몰사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실종자 가족들의 임시 숙소인 진도체육관 단상에 오른 박 대통령은 “안타깝고 애가 타고 참담하겠지만 구조소식을 기다려주기를 바란다. 이런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데 대해 철저한 조사와 원인 규명으로 책임질 사람은 엄벌토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는 분노한 실종자 가족들로부터 욕설과 고함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21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선장과 일부 승무원들의 행위는 상식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살인과도 같은 행태였다”며 강하게 비난했다. 또 “법과 규정을 어기고 매뉴얼을 무시해 사고원인을 제공한 사람들과 침몰 과정에서 해야할 의무를 위반한 사람들, 또 책임을 방기했거나 불법을 묵인한 사람 등 단계별로 책임있는 모든 사람들에 대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민형사상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진노에도 구조자는 174명에 머물러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실종자 구조 가능성은 옅어지고 있다. 재난 대처에 미숙한 정부의 대응은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다.
독일의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지는 최근 칼럼을 통해 '선박참사가 힘든 상황에 있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타격을 주고 있다. 지금까지 모든 위기들을 버텨내왔지만 수많은 젊음이들의 죽음과 당국의 구조실패의 가능성은 이젠 정말 큰 치명타를 줄 수도 있다. 정부의 운명은 때로는 정치와 전혀 연관되지 않는 사건들에 의해 결정된다'고 지적했다.
분명 집권 2년차에 들어선 박근혜 정부의 위기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 국정 기조로 삼은 박 대통령은 참담한 심정일 것이다. 우선 정부는 실종자 구조를 빠른 시일내 마무리져야 한다. 안전행정부 장관과 해양수산부 장관, 해양경찰청장 등 안전과 재난대책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고위 공직자는 사표를 써놓고 사고 수습에 나서야 한다. 여객선은 물론 항공기와 열차, 지하철 등에 대한 철저한 안전점검을 벌여야 한다. 세월호 침몰은 안전에 대한 매뉴얼이 없어서가 아니라 최소한의 기본도 지키지 않아 야기된 참사다.
온전한 시신이라도 찾아 달라는 실종자 가족들의 오열은 국민들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그렇다고 희망마저 포기할 수는 없다. '통곡의 바다'에서 기적의 소식이 들려오길 간절히 기원한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