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선]이별에 대처하는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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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선]이별에 대처하는 자세

[중도시감]고미선 편집부장

  • 승인 2014-04-17 13:11
  • 신문게재 2014-04-18 17면
  • 고미선 편집부장고미선 편집부장
▲ 고미선 편집부장
▲ 고미선 편집부장
여기 차가운 얼음덩이가 있어요. 온도의 변화를 견디지 못하겠다는 듯 흘러내리면서 모락모락 김이 나네요.

아니, 얼음이 녹는데 필요한 열을 주변에서 빼앗아버려 기체상태의 수분이 응축되어 맺히는 수증기 현상이 일어났다고 표현해야 과학적이겠군요.

노곤노곤 따스한 봄이오면, 겨우내 얼어붙었던 몸과 마음이 갑자기 녹아내리면서 사람들은 이유없이 스러지곤 합니다.

올 봄에도 그랬어요. 어제까지 건강했던 분들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다는 소식을 접할때면 가슴이 쿵 내려앉곤 했죠.

갑작스런 이별은 손 쓸 도리가 없잖아요. 마음의 준비를 했다고 해도 힘들긴 마찬가지죠.

93세에 하늘나라로 가신 고모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 남들은 호상이라고 입을 모았지만 하나뿐인 아들인 아저씨는 눈과 코가 핏빛으로 물들때까지 통곡의 늪에 빠져있었지요.

처음 알았어요. 상주가 상복의 한쪽 어깨를 내놓는 이유를 말이에요. 삼베옷의 한쪽 팔을 끼우지 않는 것은 “나는 아직 당신을 보낼 준비가 돼 있지 않습니다”라는 뜻이랍니다. 입관을 마치고 영원한 이별을 준비한 후에야 상복을 제대로 갖추어 입을 여유가 생긴다는 말이겠지요.

늘 그랬듯이 콩나물을 키우고, 반짝반짝 그릇을 닦으며, 나지막한 음성으로 찬송가를 부르셨던 고모할머니, 하늘나라에서에서도 여전히 행복하시길 기도합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이별 앞에서 서투른 것은 아닌 모양이에요.

영화 '엔딩노트'의 주인공 스나다 도모아키의 엔딩을 향한 뒷모습은 너무도 멋집니다. 40여년 근무했던 회사의 정년퇴임을 앞두고 건강검진을 받은 도모아키씨. 하늘도 야속하시지. 위암 5기, 수술 불가판정이라는 날벼락을 맞습니다.

하지만 성큼 다가온 죽음의 그림자 앞에서 그는 슬퍼하거나 좌절하지 않아요. 평소대로 자신이 할 일과 가족들에게 남길 유언, 자신의 장례방식, 마지막을 함께 해줄 사람들의 명단 등이 담긴 '엔딩 노트'를 작성하며 담담하게 죽음을 준비합니다.

거창하기만한 버킷리스트와는 다르네요. 남은 생을 잘 마감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의 것들만 소담하게 채워가는 거죠.

병상에 누워서도 아들과 함께 회의하고, 막내딸에게 '파울로'라는 세례명을 받고, 싸우기도 많이 싸웠던 아내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네요. 어머니에게 오랫동안 고마웠다고, 그런 의미에서 나는 잘 있다고 작별 인사를 하는 장면은 슬프도록 아름답고, 각자의 방법으로 그의 마지막 삶을 이해하고 돕는 가족들의 모습에 가슴이 먹먹합니다.

한참동안 기억에 남은 말이 있어요. 도모아키의 심장이 멈추기전 그의 아내가 말합니다. “내가 당신을 조금 더 빨리 이해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지난 세월에 대한 아쉬움을 말하는 것이겠지만, 오늘 그리고 내일의 모든 관계 앞에서 매우 중요한 말이기도 합니다.

비단 죽음만이 이별을 말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죠. 소소한 일상에서 겪는 헤어짐도 때론 죽을만큼 큰 데미지를 주기도 하잖아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끊임없는 이별을 하게 되는 삶, 떠나는 사람도, 남는 사람도 적당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적어도 서로에게 구질구질한 마지막은 되지 않길 바라면서 말이에요.

항상 옆에 있어 소중함을 몰랐다고, 고맙다는 말 자주 못해 미안하다고, 잡지 않은걸 평생 후회할 거라고…. 못 다한 말들은 곱게 개어 마음 한켠에 넣어둔채로 오늘도 웃으며 이별하렵니다.

相逢花滿天(상봉화만천)/相別花在水(상별화재수)/春色如夢中(춘색여몽중)/弱水杳千里(약수묘천리) 서로 만나니 꽃은 하늘에 가득하고/서로 이별하니 꽃이 물에 떨어집니다/봄빛은 꿈 속 같고/흐르는 물은 아득히 천리입니다 '김만중 구운몽中 이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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