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난순 교열부장 |
오웰은 좌우이념을 넘어 사회주의, 자본주의, 파시즘과 산업화를 전체주의라는 하나의 맥락으로 봤다. 실제로 지금 이 시대는 자본과 산업의 통제, 즉 전체주의적 시장원리주의만 존재한다. 1980년대 신자유주의가 도입되면서 90년대엔 세계화가 시대정신으로 등장했다. 자유와 시장이라는 꿀단지가 자본의 맛에 길들여진 인간들을 끌어들였다. 하지만 가진 자를 위한 자본주의는 '축적'만 할뿐 '분배'에는 인색했다.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의 임금에는 각박해지고 그들이 분담해야할 비용은 사회나 정부에 떠넘겼다. 결국 노동소득은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자본소득은 늘어났다. 러셀은 이런 현상에 대해 “운좋은 자가 운없는 자에게 아무 걸림돌 없이 횡포를 부리는 체제”라고 단언했다.
왜 우리사회가 이처럼 폭력적이며 불평등하고 비인간적이기까지 할까. 얼마전 나는 아산유성기업에 갔다. 유성기업은 현대기아차에 핵심부품을 납품하는 자동차 부품회사로 아산과 영동에 공장을 둔 중견기업이다. 황량한 들판에 자리잡은 유성기업은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했다. 다만 철제 울타리에 '책임자 처벌하라', '노조파괴 중단하라' 등의 플래카드가 걸려있어 현 상황을 짐작케 했다. 홍종인 아산공장 노조지회장을 따라 노조 사무실에 들어서자 벽에 걸린 전태일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나 또한 노동자이건만 노동자들에게 한 발 다가갔다는 생각에 전율했다.
유성기업 노사분규는 3년전 봄에 발생했다. 밤새 일하는 주·야 맞교대를 낮에 일하는 주간연속 2교대제로 바꾸자는 노사합의를 사측이 지키지 않은 것이 발단이었다. 노조는 부분파업에 들어갔고 회사는 직장폐쇄로 맞서며 용역깡패를 투입했다. 경찰이 난입하고 노조간부들이 구속·해고되고 손해배상과 가압류가 청구됐다. 그러면서 복수노조가 만들어졌다. 이 과정에서 '노조파괴'로 악명높은 '창조컨설팅'이 세상에 알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국민들과 언론은 이들의 파업에 부정적이었다. '연봉 7000만원'이 문제였다. 특히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발언이 결정타였다. “연봉 7000만원을 받는 근로자들이 불법파업을 벌인다”며 “국민들이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대해 홍 지회장은 “연봉 7000은 20년 이상 근무시 주·야 뛰고 수당이 붙어야 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대통령도 노동자다. 언론도 사회구조·현상을 왜곡시키는데 한 몫 한다”고 비판했다.
검찰도 다를 바 없었다. 지난해 말 대전지검 천안지청은 유성기업의 노조파괴 혐의 대부분을 불기소처분했다. 법원이 인정한 사실을 '사실확인 불가', '증거불충분' 등의 이유를 들어외면했다. 홍 지회장은 “현재 대전고법에 항고한 상태지만 만도가 기각됐기 때문에 우리도 기각될 가능성이 높다”고 토로했다. 노사분규의 해결의 실마리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지난 2월 노사정이 만나 대화를 했다. 그러나 3월 초 사측이 노조활동을 금지하는 내용의 단서조항 이행이 선행돼야 특별교섭을 하겠다고 주장해 결렬됐다. 또한 사측은 3월 31일 법원의 쟁의행위 기간중 징계해고 무효와 임금지급 결정에 대해 불복, 항소했다. 노·사간의 물고 물리는 지난한 싸움은 끝이 없어 보인다. 지자체도 손을 놓은 상태다. 3월 10일 천안에서 열린 '노동정책 토론회'에서 안희정 도지사에게 유성기업 사태에 대해 묻자 골치 아프다며 손사래쳤다고 한다.
또 철도노조원이 자살했고 '등기임원 연봉'이 세간의 화제였다. 코레일 직원은 노조파업 뒤 강제전보 대상자로 선정돼 불안해하다 자살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감옥에 있던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연봉 300억원을 받았다. 새삼 베버가 마르크스보다 더 호소력을 지닌 까닭을 알겠다. 그는 계급투쟁에 커다란 정치적 잠재력이 없다고 암시했다. 그의 예측은 정확했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