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아무리 가정형편이 좋아졌다 하더라도, 아무리 적은 액수의 학비라도 학교에 제때에 내기 어려운 가정들이 있듯이, 얼마전까지만 해도 월사금이나 사친회비를 내기 어려운 가정들이 많이 있었다. 도시에서는 조금 덜 했지만 농촌에서는 많이들 그랬다. 월사금을 낼 때가 되면 부모님들은 안절부절 못하였다. 월사금을 장만하느라 이집 저집 돈을 구하러 다녔다. 집에 있는 곡식이나 채소, 닭, 달걀 등 돈이 될 만한 것들을 장날에 내다 팔아서 돈을 마련하기도 하였다. 이래저래 해도 돈을 마련하기 어려워 돈을 내야하는 정해진 날짜를 지키기가 어려웠다. 돈을 마련하기 어려운 학생들이 많은 학급의 담임선생님은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월사금을 제때에 낼 수 있도록 학생들에게 독촉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교무실 칠판에는 학급별로 월사금을 낸 학생들과 못 낸 학생들의 숫자를 하루하루 막대그래프로 비교하여 그려놓곤 하였다. 담임선생님들은 월사금 독촉을 전체적으로 하다가 어느 정도 납부가 되면 나머지 못 낸 학생들을 불러다가 며칠까지 돈을 낼 수 있는지 다짐을 받기까지 하였다. 집으로 돌아온 학생들은 집안 사정을 뻔히 알기 때문에 부모님께 월사금 이야기도 못 꺼내곤 했던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몇몇 아이들의 월사금은 담임선생님이 대신 내어주시기도 하였다. 더욱이나 새 학년으로 진급하거나 졸업할 때쯤이면 더욱 그랬다. 밀린 월사금을 내지 못하면 진급이나 졸업이 미루어 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당시에는 월사금을 독촉하는 담임선생님이 야속하기도 하고 원망스러웠지만 커가면서 담임선생님의 고충도 매우 컸음을 깨닫게 되었다. 매일매일 불러서 월사금 낼 날짜를 다짐받던 어느 선생님의 별명을 고무줄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정동찬·국립중앙과학관 과학사연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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