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대중 정치부 부국장 |
소통에 인색한 대통령, 그것은 그가 살아온 삶의 궤적과 자세에서 단면을 찾을 수 있다.
박 대통령은 20여년 전 자신의 독서노트에 '옛사람이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 것은 몸이 말에 미치지 못할까 부끄러운 때문이다'라는 공자의 말을 적었다. '정치를 하는 사람은 오직 의리의 도(道)만을 알아야 한다고 말하였다. 비록 험난한 일이 쌓여있다 하더라도 진실로 이에 대처해 마음이 형통하고 의혹하지 않으면 비록 험난하더라도 반드시 풀릴 수 있고, 성과가 있을 것이다'라는 송나라 유학자 횡거의 말도 적었다. 말의 절제와 신의의 정치라는 박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박 대통령은 1979년 11월 청와대를 나온 이후 정권차원에서 아버지인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매도를 지켜봤고, 가장 가까이 있던 사람들조차 싸늘하게 변해가는 충격적인 현실을 감내했다. 언어의 절제는 청와대를 나온 이후 은둔과 칩거로 표현되는 18년 세월동안 몸으로 체득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소통을 통한 '정치의 복원'은 집권 2년차를 맞은 박 대통령이 풀어야할 중요한 과제다. '비정상의 정상화'정책 기조도 국민 그리고 정치권과의 소통이 제대로 안됐을 때 성과를 얻기 힘들다. 국가정보원 대선개입과 NLL 논란 등을 놓고 여야는 물론 여론마저 쪼개져 국정개혁이 표류한 것은 한 예다. 비록 일본 언론의 지적이지만 취임 1주년을 맞아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이 박 대통령의 통치스타일을 '제왕정치로 사회를 양분하고 있다'며 '고고(孤高)한 대통령'으로 정의한 것은 눈여겨 볼만하다.
이 신문은 '견실한 외교수완과 완만하게 회복하는 국내 경기를 배경으로 박 대통령이 안정된 지지율을 확보하고 있지만, 타협을 싫어하고 반대세력과의 첨예한 대립도 마다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박 대통령은 취임 1년간 외국언론과 수차례 인터뷰를 했지만 국내언론과는 단한차례도 하지 않았다. 역대 대통령들과의 차이점이다. 수많은 언론과의 인터뷰를 다 소화할 수도 없고, 언론사간 형평성의 문제도 생긴다는 청와대의 입장은 일견 일리가 있지만 국민이 대통령을 만나는 것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소통이 부족한 대통령'이란 비판은 피해갈 수 없었다.
그런 박 대통령이 지난달 6일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 이어 25일 취임 1주년을 맞아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담화발표 시간은 예정 시간 30분을 넘겨 41분간 이어졌고, 원고지 양만 97장에 달했다. 담화 원고는 발표 전 막판까지 박 대통령이 관여하면서 수정ㆍ보완작업이 거듭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통일분야는 최종본에 외교·안보·경제·사회·문화 등 제반분야 민간 전문가와 시민단체 등 각계각층이 참여하는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를 설립해 '통일 한반도'의 청사진을 만들겠다는 내용으로 수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그만큼 박 대통령이 담화 내용에 신경을 썼다는 얘기다.
박 대통령은 취임 후 역대 대통령의 영부인이 맡았던 행사를 모두 참석하는 등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다. 혹자는 박 대통령의 통치스타일을 '고독의 리더십'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통치는 일방통행식으로 국민에게 비춰질 때 설득력을 잃는다.
개혁의 슬로건인 '비정상의 정상화'를 이루는 것도,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추진하는 것도 국민과의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질 때 추동력을 갖게 된다. 정치가 '시간의 예술'이라고 하지만 대통령 5년 단임제 기간 중 국정성과를 내는 것은 녹록하지 않다. 박 대통령은 이제 5년 임기의 1년을 보내고 집권 2년차에 들어섰다. 지난해 2월 25일 대통령 취임식장인 국회의사당 광장에 나부끼던 '희망의 새 시대를 열겠습니다'라는 슬로건을 박 대통령이 초심으로 돌아가 기억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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