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을 마련하거나 전세나 월세 문제를 떠나서 부모 이전 세대가 인생을 걸면서 마련했던 내 집에 대한 관념들이 자녀 세대에 와서는 많이 바뀌고 있는데서 오는 사회적 현상으로 바라볼 수 있다. 부모 세대들은 내집을 장만하는 것을 사회적 성공의 잣대로 여겼다. 부모 이전 세대들은 내 자식에게 어떻게든 집 한 채 마련해 주는 것을 가장 큰 일로 여겼다. 장성한 자식들의 혼기가 다가오면 제일 먼저 걱정하는 것이 의지해서 살아갈 방 한칸 마련해 주는 것이었다. 같이 살 자식이라면 안 쓰는 빈방이나 장광 등을 다시 고쳐서 살게 하거나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집 옆으로 새로 방을 달아내서 살게 하였다.
그도 저도 안 되면 마을의 빈방이 있는 집을 수소문해서 접방살이를 하기도 하였다. 남의 집 접방살이를 한다 해도 이때는 전세니 월세니 하는 개념이 없었다. 그냥 한 식구처럼 생각해서 빈방에 와서 살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런데 도시화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처음에는 사글세부터 시작하여 전세와 월세로 발전하게 되었다. 사글세는 전세나 월세와는 달리 매달 초〔朔〕에 미리 내는 월세(月貰)라 해서 삭월세(朔月貰)라 하였다. 농촌에서 같이 사는 자식들이야 집을 고치거나 남의 집을 빌려 살다가 어느 정도 여유가 되면 옆 땅에 새 집을 짓거나 이사 간 빈집을 사서 제금을 내곤 하였다.
그렇지만 도회지로 나오는 자식들은 달랐다. 도회지에서는 단칸방이라 하여도 월세를 내야 했다. 보증금 따위도 없었기 때문에 한 달 벌어 갚을 수 있는 사글세 방을 전전해야했다. 그러니 도회지에서 내 집을 장만했다고 하면 사회적으로 성공한 셈이 되었다. 사글세 단칸방에서 월세방으로 월세방에서 전셋집을 얻어 살다가 내 집을 마련할 때쯤이면 자식들도 커서 자식들 살집 걱정을 하게 되었다. 열심히 노력하여 내집을 마련하자마자 평균수명이 지금과 같지 않아서 돌아가시는 분들도 생겨나게 되었다. 마을사람들은 그 소식을 듣고 이제 터전을 잡고 살만하니까 돌아가셨다고들 하곤하였다. 사회적 성공의 상징이었던 내집 장만이 하우스푸어라는 말에 빛을 잃어가고 있다.
정동찬·국립중앙과학관 과학사연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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