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은 썰매가 스케이트로 바뀌고 실내스케이트장이 생겨서 계절에 관계없이 어름지치기를 할 수 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추워서 얼음이 꽁꽁 얼어붙는 겨울철에나 가능한 일이었다. 물이 흐르지 않는 냇가나 저수지가 얼거나 일부러 추수가 끝난 논에 물을 담아 얼려서 그곳에서 어름지치기를 하였다. 녹은 얼음이 깨져서 물에 빠져 곤혹스러웠던 기억도 새롭다.
털모자와 털장갑을 끼고 손수 만든 썰매로 어름지치기를 하면 시간가는 줄 몰랐다. 눈이 많이 내린 날이면 한켠에서는 어름지치다 말고 눈사람도 만들고 모닥불도 피우면서 눈싸움까지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한편 고드름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도 간직하고 있다. 고드름은 주로 지붕에 내린 눈이 서서히 녹으면서 찬 기운에 얼어붙어 길게 매달리게 되는데, 마치 얼음과자를 떠올리게 하였다. 최근에는 고드름이 아래로 길게 얼어 매달리지 않고 하늘로 향해 거꾸로 어는 역고드름이 화제가 된 적도 있다. 지금은 초가지붕이나 짚단을 쌓아놓은 짚가리등을 찾아볼 수 없어서 고드름을 쉽게 볼 수 없다.
어쩌다 고드름을 보면 반갑기 그지없다. 고드름은 초가지붕의 추녀 끝이나 짚가리에 쌓여있는 볏짚의 낱알을 떨어낸 끝 부분에서 잘 생겨났다. 어떤 고드름은 굵고 길게 얼어붙어서 1m가 넘는 고드름도 있었다. 이렇게 긴 고드름은 마을 아이들이 따다가 긴 칼 흉내를 내면서 신기해하였다. 가늘고 짧거나 동글동글하게 맺힌 고드름은 마치 보석처럼 빛을 내며 반짝 반짝거려서 수정알처럼 투명하고 아름답기가 그지없었다. 추녀 밑이나 짚가리에 마치 실로폰처럼 열지어 생겨난 고드름은 나뭇가지로 건드리면 멋진 음악소리가 흘러나왔다.
마을 아이들은 매달려있는 고드름을 알맞은 길이로 잘라서 제법 음계를 갖춘 고드름 악기를 만들려고 애쓰기도 하였다. 얼음도 지치고 눈사람도 만들고 눈싸움도 하면서 고드름 악기로 연주도 해보는 사이에 추위를 잊게 되고 목이 마르면 고드름을 따서 입 안 가득 넣고 아드득 깨물어 먹는 맛 또한 어디 비길 데가 없었다.
정동찬·국립중앙과학관 과학사연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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