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고 긴 가래떡은 생명과 삶의 연속성을 상징한다. 흰 가래떡을 쫑쫑 썰어 낸 흰떡은 해와 달을 상징하고 풍요를 상징한다. 설날이 되면 어김없이 흰 떡국을 먹고 떡국을 먹어야 비로소 한 살을 먹는 것이라 한다. 떡국을 먹는다는 것 자체가 해와 달을 우주의 기운을 먹는 것으로 인식한다. 곧 나이를 먹어가면서 더욱 원숙한 새로운 한해를 기약하는 것이다. 설날이 되면 할머니와 어머니들을 열일 제쳐두고 흰 가래떡 뽑기에 여념이 없다. 두부도 하고 과줄도 만들어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래떡을 잘 뽑는 일이 걱정이다. 요즈음이야 시설 좋은 떡 방앗간이나 떡집에서 잘 만들어 낸 흰 가래떡이나 흰떡을 구해 쓰면 그만이지만 얼마전까지만 해도 떡 방앗간이나 떡 집을 도회지가 아니면 찾아보기 힘들었다. 게다가 설날이 가까워지면 가래떡을 뽑기 위해 줄서기는 다반사였다. 좋은 기계로 쌀을 가루 내어 쪄서 가래떡을 뽑아내는 데도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런 떡 방앗간이 없던 시절에는 흰 가래떡을 뽑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설날을 며칠 앞두고 일반적인 방앗간(정미소)이 그 역할을 대신하였다. 쌀 방아를 찧는 대신 다 찌어진 쌀을 밀어내는 기계에다 밥보다 꼬들꼬들하게 시루에 찐 밥을 작은 방망이로 우겨 넣으면서 흰 가래떡을 뽑아내었다. 이때 시루에 쪄온 밥이 식거나 수분이 잘 안 맞으면 쌀알이 잘 뭉개지지 않아 흰떡 가운데에 밥알이 통째로 남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방앗간과 가까이 있는 집에서는 시루에 찐 밥이 쉽게 식지 않아서 흰 가래떡이 잘 뽑아졌지만 방앗간과 멀리 떨어진 마을에서 온 시루는 식어서 잘 뽑아지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먼 마을에서는 뜨거운 시루를 빨리 나르기 위해 장정들과 수레까지 동원하기도 하였다. 장정이나 수레의 도움을 받지 못했던 마을의 아낙들은 그 뜨거운 시루를 머리에 이고 뛰다시피하여 방앗간으로 향하였다.
정동찬·국립중앙과학관 과학사연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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