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옷 한아름 가져오는 손, 고기 한 뭉텅이 가져오는 손, 과일 한 상자 가져오는 손….
할머니께서는 오랜만에 오는 자식들을 목 빠지게 기다리고 계셨겠지만, 난 그 양손에 들린 선물을 눈 빠지게 기다렸다. 그중 가장 애타게 기다린 것이 과자 종합선물세트였다. 과자상자가 다른 꾸러미들과 함께 다락방으로 옮겨지면 다락방 문 앞에서 떠날 줄 모르고 지키고 있었다. 그러다가 친척 오빠, 언니들과 함께 할머니 눈을 피해 슬금슬금 올라가 상자를 뜯는 순간 그 안에서 쏟아지는 사탕, 과자, 초콜릿에 눈이 휘둥그레지곤 했다. 다른 건 다 먹어도 절대로 손 댈 수 없었던 것이 있었으니. 할머니가 좋아하시던 영양갱이었다. 참다 못해 과감하게 뜯어서 먹던 영양갱의 맛은 지금은 추억이 됐다.
맛있는 과자에 좋은 옷을 사가지고 오는 서울사람들은 부자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머리가 크면서 다들 잘 먹고 잘 살고 있었던 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사업도 망하고 돈벌이도 쉽지 않고…. 모두들 자식 키우며 먹고 사는 일이 녹록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밤새 술상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다음날 아침, 좀 더 편해진 모습으로 한 해를 맞이하던 어른들의 모습은, 다락방에서 과자상자를 열어서 맛있게 먹으면서 한없이 즐거웠던 나처럼 그들 나름의 선물상자가 아니었을까.
내 상사의 험담을 조건없이 같이 욕해 줄 수 있는 사람, 궁핍한 내 삶을 얼굴 찡그리며 함께 고민해 줄 사람, 거침없는 성공에 힘찬 찬사를 보내 줄 사람. 오직 내 편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찾았던 고향. 그 부모 형제가 타향에서 살아가는 힘이었음에 틀림없다.
설이 3일 앞으로 다가왔다. 마음의 안식을 찾으려고 고향을 찾으려는 이들의 앞길이 시원하게 뚫리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부모님은 먼 길 굽이굽이 달려올 아들, 딸을 지치지 않고 기다려줄 것이다. 올 설엔 삶의 짐을 잠시 내려놓고 우리를 위한 종합선물 세트를 함께 풀어보자.
김은주·편집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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