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전부터 대형 쇼핑몰과 포털사이트의 개인 정보 유출 사실이 벌어졌던 탓인지 또 보이스 피싱과 스매싱 피해사례가 심심찮게 들려오고, 또 몇번은 실제로 그런 연락을 받아 본 적도 있었기 때문인지 대개는 '그래 또 터졌구나' 혹은 '또 (신상정보가) 털렸구나'하며 심드렁했다.
하지만 개인정보 유출 규모가 4000만건으로 카드를 보유한 소비자를 넘어 '금융거래를 하는 대다수 국민'이 해당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반응은 달라졌다.
지난 17일부터 카드사별로 개인정보 유출내역을 확인해 주기 시작하며 유출 범위가 단순한 개인 정보가 아니라 카드번호와 신용등급, 한도, 결제계좌와 다른 카드사의 이용실적, 심지어는 여권번호까지 유추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불안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지난 17일이후 이틀간 400만명 이상이 개인정보 유출내역을 조회할 만큼 소비자들은 사상초유의 사태에 분노와 불안감을 내보이고 있다. 무엇보다 소비자들은 이번 사태에서 범죄자 한 사람에게 전 국민의 개인정보가 털릴 만큼 허술한 금융회사의 보안시스템에 분노하고 있다. 여기에 지난 8일 검찰 수사 발표 당시 금융감독원이 “이름·휴대전화번호·직장명·주소 등 개인 정보와 신용 정보 일부”라며 제대로된 피해규모조차 파악하지 못한 사실에도 분개하고 있다. 카드사들은 이번 정보 유출로 인해 2차 피해가 발생할 경우 보상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여전히 카드번호와 유효기간을 통해 결제가 가능한 배달업체나 여행사, 홈쇼핑 업체, 해외업체를 이용할 경우 책임 소재를 놓고 공방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하고 있다. 벌써 부터 소비자들은 포털사이트 등에 카드사들을 상대로한 집단 소송 움직임에 들어갔다. 직장내에서는 삼삼오오 모여 카드를 해지해야 할지, 재발급을 받아야 할지를 놓고 얘기중이다. 결국 개인정보 유출로 피해를 입은 소비자들은 카드를 재발급 받거나, 해지하거나, 비밀번호를 변경하거나 소송을 해서라도 소비자 각자 해결해야 하는 셈이다.
지난해 11월말 블랙프라이데이로 국내의 유명 TV가 해외에서는 반값에 판매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해외직구족이 크게 늘었다. 사측에서는 유통구조의 문제라고 해명했지만 발품을 팔아야 '호갱님(호구+고객님)'이 되지 않는다는 소비자들이 많아지면서 해외직구도 그만큼 증가하고 있다. 해외에서보다 비싸게 물건을 사고, 개인 정보를 유출당하고도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 현실.
올 겨울, 소비자들의 지갑은 그 어느때보다도 안녕하지 못하다.
오희룡·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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