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열반하신 성공(性空) 스님과 여름 한 달을 보낸 적이 있다. 스님이 농담을 해도 이상하게 화두나 법어처럼 들렸다. 심지어 남녀의 음사(陰事)에 '불 땐다'는 표현을 써도 속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때 배운 '비량(比量)'의 속뜻이 갑오년 정초 며칠을 보내며 그리움처럼 피어오른다.
콕 찍어 먹지 않아도 된장인 줄 아는 게 말하자면 비량이다. 비량은 틀릴 수도 있다. 119 출동이 늦으면 무조건 '늑장출동이다'와 같은, 심도 없는 분석에서 나온 틀린 추론의 경험은 누구나 있다. 정부세종청사 시무식에서 애국가 4절 '이 기상과 이 맘으로 충성을 다하여~'까지 불렀다며 '군기 잡기'라는 공무원 친구에게 힐난하듯 말했다. “4절 있는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르는데 뭐가 이상해. 무슨 만주 용정촌의 독립선언식 애국가 봉창도 아니고. 그거야말로 너네들(?) '비정상의 정상화'지. 난 TV 볼 때 4절까지 다 듣는다.”
사실이다. 애국자여서가 아니고, 방송 송출 전과 끝난 뒤를 합친 3% 수준의 이른바 '애국가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서도 아니다. (사진은 TV화면 촬영. 굴욕이며 수모인 '애국가 시청률'의 대체용어를 어서 만들 일이다.) 지난해 근시가 사라진 대신 노안을 얻어 영상물 쪽에 관심 기울이다 드라마 팬이 됐다. 드라마가 예술로 가는 먼 길을 실감하면서 손익분기점이라는 10%대 이상의 어지간한 드라마는 챙겨 보게 된다. 지난주 본 '별에서 온 그대'는 시청률 24.6%가 나왔다. TV를 보유한 4가구 중 1가구가 이 드라마를 봤다. 프라임 타임(가장 많이 보는 시청시간대)의 시청률 합계가 70% 정도 된다. 시청률 65.8%를 기록한 '첫사랑'은 간첩이 아니고서는 거의 전 국민이 봤다는 통계나 다름없다.
아무튼지 애국자는 아니지만, 송년회 등 각종 '주연(酒宴)'에서 애국가 부른다고 흠잡는 친구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마르고 닳도록 술 마시겠다는 결기든 뭐든 얼마나 행복하냐고. 히틀러가 손기정 선수 목에 금메달 걸어줄 때 독일군악대가 연주한 곡이 애국가였는 줄 아느냐? 기미가요(君ガ代)였다. 피고 지고 또 피어 무궁화의 '무궁(無窮)'이다. 아침에 피어 저녁에 진다는 중국인의 '조개모락화(朝開暮落花)'보다 얼마나 긍정적인가. 기미가요는 '모래알이 바위가 되어 이끼가 낄 때까지'다. 우리가 소극적이 아니라, 바다가 마르고 산이 닳을 때까지라는 비유는 역설적 강조 아닌가. 1924년 5월 25일자 동아일보에 나오는 '애국가 사건'은 애국가를 부르기만 해도 잡혀간 얘기였다. 애국가 부르기가 항일독립과 국권회복의 '비량'임을 쥐새끼 같은 일제가 간파한 것이다. 이렇게 다시 말해주고 싶다.
물새를 보고 물이 가까움을 안다. 세종청사에서 사회를 맡고 서울청사가 따르는 대한민국정부 이원 시무식에서 추론한 행정 효율성이 끝까지 옳은 '비량'이길 바란다. 죽 끓듯 시무식 하고 죽 쑤는 1년이 아니어야 한다. 연기 아닌, 활활 타는 불을 보고 불을 인지하는 건 '현량(現量)'이다. 자신의 믿음에만 근거하다 틀리는 '극성비량(極性比量)'도 있다. 때로는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는 말[言]의 세계다. 비판과 분별이 많은 직업일수록 삼가 한 해를 시작해야겠다.
최충식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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