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도랑은 물 다스리는 일 (치수:治水)의 뿌리였다. 지금이야 경지정리사업이나 하천정비사업 등을 통하여 비교적 큰 물줄기들은 잘 정비가 되어있다. 하지만 샘물이 솟아오르는 물의 발원지와 같은 작은 도랑이나 실개천, 논·밭과 생활하수가 흘러나오는 도랑에는 관심이 적은 것 또한 사실이다.
우리 선조들은 집터를 만들거나 마당이나 생활하수를 관리 할 때는 무엇보다도 먼저 도랑을 내고 주변정비를 해왔다. 주변에서 집안으로 흘러들거나 끼어드는 물을 막거나 빗물이 집안이나 마당에 닥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장마나 큰 비가 오기전이나 후에 반드시 손보는 것이 마당주변의 도랑이었다. 지금도 도로공사를 하거나 택지조성을 할 때 제일 먼저 하는 일이다. 논농사나 밭농사도 마찬가지이다. 논농사나 밭농사 일을 시작할 때도 무엇보다도 먼저 살피는 일이 물길이다. 물길이 바로 도랑이기 때문에 도랑부터 손을 보게 된다. 이미 만들어진 도랑이라면 물이 흘러가다가 막힐 것들은 없는지 도랑이 무너져 흐르는 물이 엉뚱한 곳으로 흘러갈 일은 없는지 살피고 먼저 물길을 잘 잡는다. 만약에 새로운 물길이 필요하면 필요한 곳을 정해서 도랑을 내게 된다.
논농사나 밭농사에서도 물도랑은 생명줄과 다름아니다. 도랑을 잘못내거나 관리를 잘못하여 훼손되게 되면 곧 바로 물이 논·밭을 망쳐버리거나 곡물들을 망쳐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도랑물은 가뭄에 단비처럼 쓰이기도 한다.
한편 도랑은 생태계의 보고이기도 하다. 졸졸졸 흐르는 도랑 물 속은 여러 가지 미생물과 수초, 올챙이와 개구리, 송사리, 미꾸라지, 우렁이 등등의 보금자리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마을 아이들의 자연생태체험학습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도랑 생물들의 한해살이와 생태특성을 자연스럽게 익혀가면서 생활에 활용하였다. 도랑에서 올챙이, 개구리, 송사리들과 함께 했던 어린 날들을 회상해보자.
정동찬·국립중앙과학관 과학사연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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