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정치권이나 지자체에서 촉각을 곤두세우는 부분은 지자체 파산제가 예산을 포함한 자치권 박탈을 의미해서만은 아니다. 상당수 시·군·구가 자체 지방세 수입으로 인건비조차 못 건질 만큼 나빠진 재정 현실 때문이다. 원인이 어디에 있건 지방재정을 튼실하게 하는 정책적 노력이 오히려 선행될 일이 아닌가 한다.
재정자립도 10~30%인 지자체가 절반에 이르는 실정을 무시한 지자체 파산제는 섣부른 조치가 될 수 있다. 지방자치에 대한 과도한 침해가 될뿐더러 중앙집권 회귀를 우려하는 시각까지 있다. 예산 낭비 사례를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선진국형 재정 준칙을 만든 다음 도입해도 늦지 않다.
사실 지자체의 재정 불건전성은 정당공천제에 대한 암묵적인 믿음과 크게 상관관계가 없다. 물론 호화청사나 대규모 축제 등 무리한 사업 수행은 상시적인 견제가 가능해야 한다. 지방재정의 책임성은 당연히 강화할 몫이다. 그렇더라도 정당공천체 폐지의 견제장치가 아닌 지자체 자율이 확보된 연후에 해야 정당성이 성립된다.
지자체 재정 위기는 방만한 운영에도 기인하지만 국고보조사업에 따른 부담 가중도 원인이었다. 교부세 제도, 국세와 지방세 배분 등 보다 상위의 근본적인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파산제를 적용하면 다수 지자체가 그 범주 안에 들어 멍에를 뒤집어쓸 처지다. 낮은 재정자립도에 허덕이는 지자체 살림살이를 다른 선진국 지자체와 견주는 것부터가 사실은 모순이다.
지방이 독립적인 재정적 예산을 확보하는 구조가 안 된 지금 할 일은 따로 있다. 비효율적 재정 지출 요인을 없애 재정 책임감을 부여하는 수단, 주민과 지방의회 감시 기능 등 절차적 보완이 우선돼야 한다. 파산제는 인사권, 재정권을 중앙정부가 회수하는 지방자치의 파산을 의미한다. 파산제 법정화는 지자체의 조세권 등 자율성 확보 장치를 만들고 나서 시행해도 늦지 않다. 그것이 바른 순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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