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와 공책들도 그랬다. 요즈음은 종이가 너무 흔해서 분리수거 물질의 대부분이 종이이지만, 얼마전까지만 해도 매우 귀한 물질이었다. 특히 학생들의 공부에 필수적인 교과서와 공책용 종이도 부족한 시절이 있었다. 교과서는 교복과 마찬가지로 내용이 변하지 않는 한 후배들에게 물려주곤 하였다. 교과서 종이의 질도 지금처럼 좋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잘 찢어지거나 훼손이 되었다. 후배들에게 물려주려면 깨끗하게 써야했다. 교과서를 깨끗하게 잘 쓰기 위하여 교과서의 표지를 다른 종이로 싸서 썼다. 새 교과서를 받자마자 교과서의 표지를 싸기 위하여 넓은 종이들을 찾아서 모으곤 하였다.
그런데 이 표지를 싸는 종이마저도 귀한 시절이었다. 주로 조금 두터운 달력 종이나 포대종이 등을 구해서 교과서 표지를 정성스레 싸곤 하였다. 겉에 얇은 비닐이 입혀진 포대 종이는 교과서 표지를 싸는데 아주 그만이었다. 공책도 제대로 된 공책을 쓰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어렵게 구한 공책도 애지중지하면서 아껴 썼다. 교과별로 겉 표지에 써있는 공책의 경우, 새 학기나 새 학년이 시작되면 공책의 낱장들을 샅샅이 살펴서 미처 쓰지 못한 낱장들을 골라 뜯어내 모아서 철끈으로 매거나 철사 줄 등으로 묶어서 다시 쓰곤 하였다. 공책에서 뜯어낸 종이는 그런대로 질이 좋은 편이었다.
그것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갱지를 사서 묶어 쓰곤 하였다. 교과서뿐만 아니라 다른 책들도 모두 헤어질 때까지 후배들에게 물려주기도 하고 친구들끼리 돌려 보기도 하였다. 헌 책이나 헌 공책도 함부로 하지 않고 귀하게 다루었다. 헌책방을 찾아다니면서 필요한 책을 구했을 때 밀려왔던 희열은 배움과 할제(미래)를 향한 열정을 담고 있었다. 아직도 남아있는 헌책과 갱지공책에서 그 시절의 열정을 느껴보자.
정동찬 국립중앙과학관 과학사연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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