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남·여가 자유롭게 어울리는 것은 매우 정상적이고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도덕과 윤리를 망각하고 지나치다 보면 언제나 사고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그러므로 옛 성현들은 남녀 간의 예의를 무엇보다도 강조하곤 하였다. 그것이 바로 내외였다. 내외는 낯선 남녀 사이에는 물론이고 낯 익은 사이라 하더라도 서로 얼굴 대하는 일을 어려워하거나 피하는 일을 말한다. 요즈음은 거의 쓰이지 않는 말이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주 쓰이던 말이었다.
어릴 적부터 같은 마을에서 친하게 자란 사이라 하더라도 나이가 들수록 서로 예의를 차려 함부로 마주하려하지 않았다.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이 어느 만남에서 서로 쑥스러워 하거나 어려워하여 분위기가 어색하면 “어 너희들 내외하냐?”고 하면서 분위기를 띄우곤 하였다. 서로 간에 끌리거나 그리운 정이 있으면 더욱 그랬다. 요즈음 세대들이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깜짝 놀라면서 자신도 모르게 “헐”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남·여 사이에 예의를 지켜야 하는 일은 부부 사이에도 엄격히 적용되어 부부를 내외라 일컫기도 하였다. 남편은 바깥일을 부인은 집안일을 하는 것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말이다. 지금은 사랑하는 연인 사이에 서로 팔짱을 끼고 손을 잡고 다정하게 길거리를 활보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단히 신기한 광경이어서 화젯거리가 되기도 하였다.
그런 까닭에 아무리 부부라 하더라도 남편과 부인은 저만치 한참 떨어져서 각자 걸어가곤 하였다. 연인사이라 하더라도 함부로 가까이 할 수 없었다. 사랑을 고백할 때도 지금은 거침없이 만나고 각종 매체를 통해서 드러내놓고 표현하는 경향이 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짝사랑으로 애를 태우거나 작은 쪽지에 마음을 적어서 몰래 전하곤 하였다. 집안 어른들은 과년한 딸아이에 대한 관심과 단속에 특별히 신경 쓰곤 하였다. 요즈음 생각하면 고리타분하고 비상식적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내외는 공동체 사회를 나름대로 지탱해가는 힘이었다.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同席{남녀가 일곱 살을 먹으면 자리를 같이하지 않는다.)을 가르침으로 했던 선조들의 깊은 뜻을 한번쯤 되새겨보자.
정동찬·국립중앙과학관 과학사연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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