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상윤 건양대 병원관리학과 교수 |
1980년대에 미국의 경영 컨설턴트인 톰 피터스가 주창하고 마이클 해머 교수가 계승 발전시킨 '경쟁이 왕도'라는 원리는 지금까지 사회나 조직을 운영하는 제1의 경영원리로 인식되고 있다. 미국의 부크홀츠 같은 경제학자는 거기에 한술을 더 떠서 '행복해지고 싶은가, 경쟁하라'는 주장을 서슴없이 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이념이든지 용도가 다하면 기우는 법. 30년을 유지해온 경쟁과 고성과 원리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주체 또는 본질에 대한 담론의 부상 때문이다. 시장을 구성하는 소비자 세력에 의해 본질에 대한 질문들이 강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기업이란 과연 무엇이고, 경영자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라는 물음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질문은 지금까지 성과달성의 흐름을 지배해온 기술력이나 마케팅 제고를 위한 물음과는 그 차원이 다르다. 세상의 주관자로서 인간의 지위를 되찾아야 한다는 근원적 인식의 발로이다. 물론 경쟁을 통한 성과달성이라는 기존 패러다임의 역할이 소진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모든 문제해결의 열쇠가 되지 못한다는 인식의 공유는 이루어지고 있다.
세상 여기저기서 인문학 강좌가 붐을 이루는 것이 바로 그 증거이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엘리트 대중들이 열심히 일할수록 가난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불현듯 인식했기 때문이다. 부자와 권력자들의 끝이 보이지 않는 갑(甲)질에 더 이상 도망칠 곳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죽으라고 일해도 월 200만 원을 벌지 못하는 임금 근로자의 숫자는 500만 명을 넘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런 부조리한 현상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경쟁인가?'라는 근원적인 회의에 직면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것은 그동안 '차별화된 경쟁을 하지 않으면 죽음뿐'이라는 교리와는 정반대되는 인식의 새로운 출발점이 되고 있다.
2000년대 이후 소득수준이 높아진 대중들은 부유계층의 명품소비를 따라하면서 그들만의 차별화된 삶의 양식도 있다고 주장했다. 기업들은 이런 대중들의 매스티지 심리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면서 그들의 주머니를 한껏 털었다. 카드빚이 잔뜩 쌓인 대중들은 그것이 착각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몸에 지니는 명품이나 스마트폰, 또는 애용하는 커피에 의해 인간이 평가되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을 마음의 저 깊은 심연으로부터 끄집어 낸 것이다.
엘리트 대중들이 본질에 대한 물음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생성된 새로운 경영의 지도 원리는 바로 착한 이미지다. 물론 이것도 영원할 수는 없겠지만, 당분간 경영자들이 이 흐름을 비켜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경영자들은 이제 인간에 대한 통합적 이해를 통한 적극적 행복추구 전략을 수립하고 시행해야 한다.
그 첫 번째로 인간으로서의 경영자 자신을 바로 세울 것이 요구된다. 그동안 경영자들이 경쟁과 수익성 추구의 화신역할을 했다면, 이제부터는 따뜻한 인품을 갖추고 따뜻한 카리스마를 수행해야 한다.
두 번째는 타인에게 따뜻한 온도를 전달하는 난로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큰 수익을 올리기 위해 직원들을 쥐어짜면서 시장으로부터 비판을 받을 것인지, 작은 수익을 내면서도 오래도록 박수를 받을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마지막으로는 사회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조직을 더욱 행복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것의 핵심은 바로 자율과 소통이다.
이와 같은 패러다임의 전환은 세상을 정신적으로 더 풍요롭게 만들 것이다. 결국 훌륭한 경영자의 역할이란 '인간과 세상의 발전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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