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기성 논설위원 |
#같은 시기에 막을 내렸던 프로야구 한국시리즈를 복기해보자. 일본시리즈의 감동의 물결과는 달리 삼성라이온즈의 연이은 우승으로 한국시리즈는 다소 맥 빠진 느낌마저 안겨줬다. 그나마 관심을 모았던 것은 정규시즌에서 4위를 기록한 두산베어스가 승승장구 끝에 한국시리즈까지 올라와 삼성과 맞붙는 저력을 과시했다는 점이다. 두산은 3승1패로 우승 고지 문턱까지 먼저 달려갔지만 승리의 축포를 터뜨리지는 못했다. 사실 두산은 1승을 남겨두고 허리띠를 바짝 조여매고 우승을 향해 돌진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4승1패로 두산의 우승이 확정될 경우를 상상해보라. 두 차례 더 진검승부를 가릴 수 있는 기회를 두산이 앗아가 버릴 때 그 따가운 눈총은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는가. 매일 밤 세상의 시름을 다 잊고 TV앞에 앉아 한국시리즈의 재미에 몰입해오던 야구팬들의 실망감은 어떻게 달랠 수 있으며 경기 단축으로 인한 입장료 수입 감소에 따른 원망은 또 어떻게 감당하겠는가. 3승1패 이후 두산이 처한 딜레마였던 것이다.
#결국 삼성은 죽기 살기의 각오로 경기에 임하는 한편 두산의 선수들은 굳이 남은 1승을 앞당겨 주위로 부터 비난을 받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 결과 경기의 흐름은 삼성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으며 결국 삼성의 한국시리즈 3연승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스포츠에서 '만약'이란 가정법은 무의미한 일이지만 두산이 우승했다면 삼성 박한이가 가져간 한국시리즈 MVP 트로피는 누구에게 돌아갔을까. 두산의 4번 타자 최준석이 새로운 스타로 탄생되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의 홈런 본능은 삼성과의 5차전에서 가장 강렬하게 빛을 발했다. 비록 삼성에게 패했지만 그의 홈런 두 방은 야구팬들에게 적지 않은 흥분과 감동을 안겨줬다. 이날 최준석은 한국시리즈에서 나온 최다 홈런 타이기록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사실 삼성 선수들과 두산 선수들의 연봉은 엄청난 차이를 드러낸다. 박한이의 올해 연봉은 3억5000만원인데 비해 최준석 연봉은 1억4500만원이다. 연봉 규모는 그 선수의 기량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따라서 삼성이 우승하는 것은 연봉이나 기량의 차이에서 크게 놀랄 일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두산의 승리를 갈구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되풀이되는 강자만의 독식은 결코 감동적이지 않다. 때문에 약자인 두산에 더 많은 야구팬들의 열광적인 응원이 몰렸던 것이다. 그러나 두산은 3승1패의 딜레마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채 우승의 감동 드라마를 써내려가지 못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한국시리즈가 펼쳐지는 야구장에 깜짝 등장해 시구를 선보였다. 그러나 감동 없는 시구로 끝날 것이 아니라 스포츠의 감동을 정치에서도 배웠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늘날 한국의 정치상황에서 감동을 이야기하는 것이 어쩌면 한낱 희망사항일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희망사항을 많은 국민들은 매일매일 갈구하며 살아간다는 점을 박대통령은 인지해야 한다. 박대통령의 취임 첫해는 감동 없이, 일그러진 모습으로 흘러갔다하더라도 남겨진 4년 가운데 어느 순간만이라도 감동의 정치가 실현되길 소망해보는 이유인 것이다. 서민들의 삶에 홈런 같은 큰 즐거움은 아닐지라도 안타 같은 작은 위안이라도 안겨줄 수 있는 그런 정치가 펼쳐지기를 국민들은 희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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