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충식 문화토크]김치 한 포기마다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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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충식 문화토크]김치 한 포기마다 사랑

  • 승인 2013-11-10 13:38
  • 신문게재 2013-11-11 17면
  • 최충식 논설실장최충식 논설실장
이번 김치 맛은 색다르다. “사근사근 깊은 맛이 전북 쪽인데?” “맞아요. 맞아!” 내 식감에 감동하는 척 거드는 사람. 웬만한 동네 엄마들은(가끔은 할머니까지) 언니 동생 삼고 마는 아내 덕인지 냉장고에는 늘 70%의 충청도, 20%의 경상도, 10%의 전라도와 기타 지역 김치가 넘쳐난다. 충청도 김치도 서해안과 내륙 출신의 맛이 구별된다. 토박이 솜씨도 집집이 차이나고 한 식구도 누가 버무렸느냐에 손맛이 갈린다. 같은 나박김치 같지만 제주도, 충청도, 서울의 맛은 다르다.

▷다르면서 공통점이 있다. 일상의 음식이면서 아주 가끔은 영혼에 안식을 주는 소울푸드(위안음식)라는 점이다. 이방의 낯선 유해균(?) 틈에서 정말로 한국형 유산균이 보내는 생체신호 때문인지 며칠의 외국 나들이에 김치가 그립도록 당긴다. 오감에서 과거 기억을 불러내는 데 후각(냄새) 이상이 없다. 그걸 인정한다면 특색 없는 것이 특색인 서울 김치 맛에 옛 하숙집 딸을 잠깐 생각했다고 크게 죄 될 일은 아니다. 마트에서 절임배추와 양념소를 사다 뒤적뒤적하면 되고 범람하는 조미료에 맛이 기성품화할수록 간절한 것은 손맛이다.

▷스페인 올리브유, 그리스 요구르트, 인도 렌즈콩, 일본 콩과 함께 세계 5대 건강식품에 꼽힌 김치. 그런데 어쩌다 지난해 수출 1억660만 달러, 수입 1억1084억 달러 상당의 김치 순수입국이 됐다. 햄버거 가격인 빅맥지수처럼 언젠가 김치지수가 각 나라 물가 기준이 된다 했을 때, 중국의 파오차이(泡菜)나 일본의 짝퉁 기무치(キムチ)가 기준이 되지나 않을지 걱정될 정도다. 12월 초 김치의 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 등재가 예고된 김치 종주국 체면이 상당히 구겨졌다.

▷어떤 사람은 200가지가 넘는 김치의 레시피(요리법)를 획일화하자고 주장한다. 그런 사람에게 300~400가지인 치즈를 한 가지로 통일했다면 세계인의 음식이 됐을지 묻고 싶다. 치즈를 생치즈류, 연성치즈, 염소젖 치즈, 블루 치즈, 반경성 치즈, 경성 치즈, 가공 치즈로 나누듯 김치도 장아찌형, 물김치형, 박이형, 섞박지형, 식해형 등 풍부한 요리법을 살려야 한다고 본다. 뛰어난 프로바이오틱스(유익균)인 김치 전파에도 더 주력해야 한다. 맛과 효능, 따라올 수 없는 손맛, 그리고 스토리텔링은 기본이다. 마침 대전시민대학이 김장김치 교실을 연다. 김장이라는 '집단지식' 보급을 넘어 소박하고 담백한 충청도식 김치 아카데미로 발전하길 기대하는 건 무리일까.

▷입동 직후 5일 내에 김장해야 제 맛이라는 말도 옛말이다. 기상청 김장 지도에 충청권 김장 적기는 11월 하순께지만 밥이 이데올로기고 김치가 인권인 이웃이 있는 한, 사랑의 김장은 적기가 따로 없다. 충남농협, 백석대, 청주새마을부녀회 등에 이어 대전시사회복지관협회와 하나은행 충청사업본부가 오늘(11일) 사랑의 김장나누기 행사를 벌인다. 그 바통을 이어받은 사랑의 행렬이 계속 예고돼 있다. 인간의 이기적 본성을 꼬집으며 '인간의 내면에는 다른 사람의 재산을 빼앗고 싶은 마음, 다른 사람의 행복을 빼앗고 싶은 마음이 존재한다'던 애덤 스미스 도덕감정론의 첫 문장을 묵사발 만드는 따스운 풍경이다. '가(家)' 차원에서 사회적 차원으로 옮아간 김장의 인문학은 그냥 이대로 인류문화유산 감이다.

최충식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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