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미선 편집부장 |
제주도 최남단 서쪽 끝, 작은마을 대정읍 하모리. 구멍숭숭 가무잡잡한 현무암질 돌들이 마중 나오는 집.
바람을 따라 좁은 올래를 걷다보면 한길에서 안방까지 한걸음에 들어설 수 있는 곳. 현관도 없고 화장실도 없고 외양간 문조차 없던 그 집.
어릴적 기억속의 외갓집은 짭짤한 맛이 났다. 꿀꿀거리는 무엇(?)에 대한 공포심에 몸서리치며 용변을 보던 늦가을 어느날 밤, 눅눅한 포유동물의 냄새사이로 바다내음이 몰려왔다. 바로 옆에서 파도가 치듯 눈 코 입술까지 소금맛이 났다.
최근 이 이야기를 전하자 어머니는 꿈을 꾼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외갓집에서 한번도 실외 화장실을 이용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 글쎄….
“여자에게 있어 고향은 어머니란다.” 제주도에서 태어나 뭍으로 시집오신 필자의 어머니는 몇해 전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 고향이 없어졌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해지는 풍경이 아름답던 산방산 인근 할머니 묘소를 떠올리시는지, 노을처럼 눈빛을 물들이시곤 하신다. 건강이 더 나빠지신걸까…. 가슴이 쿵 하고 내려 앉는다.
어머니에 대해 생각해 낼 수 있는 가장 오랜 기억이 있다. “수많은 아이들이 춤을 추는데, 우리 딸이 제일 잘 해. 한눈에 알아봤어.” 유치원 학예회 날 어머니는 신기하게도 수십명의 아이들 사이에서 단번에 딸을 찾아냈다. 뉴욕스퀘어 한복판에 옮겨놓아도 결과는 마찬가지 일까.
자라면서 '잘한다, 최고다'라는 어머니의 말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우리 엄마가 나는 꼭 될거랬어'라는말을 종교처럼, 때론 부적처럼 간직해 왔다.
이제는 결혼 하고 딸을 낳아 키우다보니 세상의 모든 엄마들은 자기 자식에게 똑같은 말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또한 잘하라고 채찍질 하는 대신, 잘할 수 있도록 자신감을 심어주는 어머니의 혜안을 이제야 깨닫는다.
'낳기만 한다면야 누군들 못하겠습니까/제대로 기르고 가르쳐야 하기 때문에 어머니의 얼굴에 주름살이 지고/근심 걱정이 그칠 날 없겠지요/어머니는 당초부터 어머니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자식을 낳아 기르는 과정에서 어머니가 됩니다/한 사람의 어진 어머니는/백 사람의 교사에 겨줄 만하다고 합니다 -법정스님 세상의 어머니들에게-'
전국 65만700여명의 수험생이 12년간 노력해온 실력을 아낌없이 풀어낸 2014학년도 수학능력시험이 어제 치러졌다.
지난해 수능 다음날부터 가슴을 졸이며 'D-365'을 거꾸로 하루하루 세어왔을 수험생들에게 격려와 박수를 보내고 싶다.
'수능 대박'이든 아니든 훌훌 털어버리기 바란다. 인생은 어차피 마라톤이며 대학은 인생의 한 과정일 뿐, 최선을 다했다면 결과 또한 최선일 것이다.
몇주전부터 필자가 다니는 교회에는 고3 자녀를 둔 학부모를 위한 기도공간이 따로 생겼다. 부쩍 추워진 날씨에도 불구하고 '합격 기원'을 위한 어머니의 새벽기도 행렬은 계속됐다.
전국에서 소위 '입시 기도발' 잘 받기로 소문난 사찰과 성당마다 인산인해를 이뤘다는 뉴스를 접하며 예나 지금이나 자식들은 어머니의 응원과 기도를 부적처럼 지니고 산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모든 자식들은 너무 쉽게 잊는다. 대학 합격, 그 절반은 뒷바라지한 부모의 몫이란 것을 기억하자.
수능을 마친 수험생들에게 고생했다는 격려와 함께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해방감에 일탈의 거리로 나서지 말길…. '수험생 할인.이벤트'등에 혹하지 말고, 정말 중요한 것을 잊고있지는 않은가 돌아보는 시간을 갖길 바란다.
수험생 들이여 오늘은 그대들의 뒤에서 더한 긴장과 스트레스에 시달렸을 어머니들의 손을 꼭 잡아보길 바랍니다. 그리고 이 말을 전해보세요.
“어머니,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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