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준수 한국병원 정신의학과 과장 |
한 연구에서 화병은 일반인의 4.35%에서 발견되고 결혼한 중년 이후의 여성, 낮은 교육수준의 대상에서 더욱 흔하게 관찰되었다. 남편의 외도와 음주 문제, 도박, 부부싸움, 무관심, 시부모와의 갈등 등이 화병 유발요인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화병은 여러 가지 유발 요인이 장기간에 걸쳐 중복돼 발생하며 오랜 시간에 걸쳐 분노 감정의 흥분과 쇠진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면서 만성화 된다. 화병은 우리나라 민간에서 사용하는 병명으로, 한국 고유한 문화적 배경에서 표현되는 독특한 양상을 보이며 한국의 문화관련 증후군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화병은 특정한 신체증상과 고통스런 감정을 특징으로 한다. 화병의 흔한 신체 증상으로는 두통, 몸과 얼굴의 열기, 심계항진, 소화 장애, 가슴의 치밀어 오름, 목과 가슴의 덩어리, 답답함, 입마름, 어지러움 등이다. 흔한 정신 증상으로는 대부분의 우울, 불안, 신경질, 짜증, 격정 등이 관찰된다.
그러나 실제 증상의 표현에 있어서는 신체 증상을 주로 호소한다. 화병은 심인성 또는 반응성인 만성분노장애이며 장기간 사회적으로 원만한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계속 자신의 분노를 참아야 하는 과정에서 화가 쌓여 발생한다. 화병은 우울장애, 다음으로는 범불안장애와 신체형 장애와 공존하는 경우가 많고, 화병 단독으로 있는 환자가 상당수 발견되고 있다. 화병은 우울증과는 달리, 회복력이 매우 좋으며 대개 자살 사고나 자살 시도를 하는 경우는 드물며, 화병 환자는 스스로 '화병'이 있다고 보고하는 경우가 많고 슬프거나 우울하다고 보고하는 경우는 드물다. 또한 화병의 발생은 대략 10년에서 최대 30~40년에 걸쳐 나타난다. 현재까지 화병에 대한 명확한 진단기준이 확립되지 않았지만, 각종 내과질환의 초기 증상, 갱년기 장애, 갑상선 이상, 심장 질환, 불안증 및 우울증과 구별되어야 한다.
화병의 치료에는 정신사회적 치료 및 약물적 치료가 제안된다. 화병의 적절한 약물치료는 화병 증상의 뚜렷한 호전을 볼 수 있다. 한 연구자는 지지적 정신치료를 제한하며, 기본적으로 환자가 하소연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주는 것이 좋다고 하였다. 인지행동치료도 화병의 치료에 이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완 요법은 화가 날 때 호흡이 가빠지는데 일부러 호흡을 느리게 하면 화를 가라앉힐 수 있다. 화병을 이기기 위해서는 실패했다는 생각 바꾸기, 흑백 논리를 피하기, 완벽하려 하지 말기 등 생각을 바꾸어야 하며, 피해 의식을 줄이고 낙천적인 생각을 하며 좋아하는 활동을 하도록 해야 한다. 답답한 속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고 가슴을 후련하게 하고 근본적인 치료를 위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찾는다면, 환자들의 삶의 질은 한 층 더 높아질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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