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은남 경제부 부장 |
정부출연연구기관에 대한 국정감사가 진행되던 21일 출연연 관계자는 퉁명스럽게 이같이 내뱉었다.
대덕특구 정부출연연구기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는 올해도 어김없이 비정규직 해결방안, 연구원들의 이직, PBS(연구과제중심제도)폐지, 정년연장 등의 해묵은 문제들이 거론됐다.
어느덧 국감장의 단골메뉴가 됐다. 문제해결을 위한 제도개선이나 예산이 지원되지 않아 기관들도 어쩔 수 없는 가운데 고질화된 출연연의 문제는 국감에서 실속 없이 무한 재생되고 있는 것이다. 매년 반복되는 질문에 기관장들 역시, '개선하겠습니다', '노력하겠습니다' 등 영혼 없는 대답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국감장의 풍경이다.
21일 출연연구소 27개 기관, 22일 19개 미래부 직할 기관과 유관기관에 대한 국감에서 질의와 답변을 포함, 의원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잘해야 7분. 의원들이 몇 마디 질의하면 질의시간이 끝나버려, 기관의 답변은 생략하기 일쑤다.
시간에 쫓기는 의원들의 초(秒) 치기 질의와 기관장들의 대책없는 단답형 답변은 출연연이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찾기에는 물리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다. 국감장 증인석에 출석했던 절반 이상의 피감기관 기관장들은 말 한마디도 못하고 자리를 떠나야 했다.
국감장에서 매년 반복되는 비정규직 해결방안, 연구원들의 이직, PBS(연구과제중심제도)폐지, 정년연장 등은 '안정적인 연구환경 조성'이라는 큰 틀에서 보면 같은 문제들이다.
총액임금의 60~70%만 책정하고 연구과제를 수주해서 인건비를 충당하는 PBS의 도입으로, 연구자들이 본연의 연구보다는 돈 되는 과제를 수탁하기 위해 동분서주할 수밖에 없어 보따리장수로 전락한 지 오래다.
경쟁과 효율의 논리로 인해 연구가 아닌 돈 버는 일에 내몰리는 연구자들 가운데 100명 가량이 매년 이직을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대학보다 연구환경도 열악하고 61세 정년인 연구원장이 65세 정년인 대학을 이직 1순위로 꼽는 것은 인지상정인 듯싶다.
우수 연구자의 유출 이외도 비정규직 문제도 PBS와 맞물려 있다. 기관마다 정원이 묶인 상황에서 과제수행에 필요한 인력은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원으로 충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비정규직이 늘어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이로 인해 출연연 인력 1만 8756명 중 44%인 8236명이 비정규직이며 25개 출연연 중 비정규직 인력이 50%를 넘는 기관이 12개나 된다.
또 있다. 정원을 늘려주지도 않는 상태에서 비정규직을 해결하라며 정부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방침은 출연연을 더 답답하게 만들고 있다. 출연연들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대신 비정규직 비율을 낮추기 위해 비정규직 계약해지라는 꼼수를 쓸 수밖에 없다. 비정규직 축소는 해야 할 연구는 그대로인데 연구인원은 줄어, 제대로 된 연구가 진행될 지도 의심스러워진다.
이뿐아니다. 비정규직 계약해지는 노사갈등 문제로 비화돼 일부 연구원은 불법파견 등의 이유로 고소돼 법의 심판을 받아야 될 처지에 놓이는 극한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구조적인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 없이 연구기관이 알아서 하라는 것은 출연연에게 도둑질을 강요하는 것과 다름없다. 출연연에 불법을 강요하는 형국이다. 국가 과학연구에 대한 국가의 철학이 있느냐는 의문이 생기는 대목이다.
국감에서 매년 반복되는 안정적인 연구환경 조성은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10년 가까이 여전히 진행형이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개선하기 위한 정부의 실천은 요원하기만 한 이러한 악순환이 언제 개선될지 출연연 모두 궁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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